85세 할머니, 혼자서 평생 모은 12억 장학금 기부

중앙일보

입력 2016.03.08 01:40

수정 2016.03.0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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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힘든 일을 해서 모은 12억원이 입금된 박수년씨의 예금 계좌(위)와 이를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에 이체한 영수증(아래 오른쪽). [사진 대구 수성구]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80대 할머니가 사는 집을 뺀 전 재산 12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박수년(85)씨는 7일 수성구청을 방문해 장학금을 기탁했다. 대구은행 수성구청지점 계좌에 있던 12억원을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장학금을 전달했다.

박수년 할머니, 6·25 때 남편 잃고
농사·공장일로 모은 전 재산 쾌척

박씨는 “평생을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남편을 기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진훈 구청장이 장학금을 남편 이름으로 지급하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박씨와 외아들도 동의했다.

박씨는 17세 때인 1948년 김만용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2년 뒤 6·25전쟁이 일어났고 남편은 28세의 나이로 입대했다. 그리고 2년 뒤 전사통지서가 박씨에게 날아왔다.

이후 박씨는 농사부터 양말공장 일까지 60세가 될 때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번 돈은 대부분 저축하고 거의 쓰지 않았다. 생활이 나아질수록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남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처음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지만 이 구청장의 권유에 따라 사연을 공개했다. 하지만 얼굴 사진 촬영은 끝내 거부했다.


이 구청장은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김만용·박수년 장학금’이란 이름으로 지급할 예정”이라며 “구립 범어도서관에 두 사람의 이름과 장학금 기증 사연을 적은 기념공간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