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기가 느껴지는 혀 맛, 끊을 때 치아에 전해지는 쾌감, 식도를 통과할 때의 상쾌함은 물론이고 빨아들일 때 입술을 통과하는 최대의 감칠맛까지. 밥이나 빵에서는 이런 자극을 느낄 수 없다.”
『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를 쓴 일본의 논픽션 작가 쓰지하라 야스오는 국수를 이렇게 칭송했다. 그의 표현처럼 밥과는 전혀 다른 식감 때문인지, “후루룩” 하고 옆사람의 허기를 자극하는 음향 때문인지 한국인의 면(麵) 사랑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인 한 사람당 소비한 라면은 무려 72.4개로 부동의 1위였다. 여기에 최북단 함경도의 함흥냉면에서 제주도의 고기국수까지 각 지역에서 즐기던 개성 강한 향토국수는 우리의 면 선택권을 한층 넓혀 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국수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맛있는 월요일이 한반도 국수의 계보를 찾아봤다.
[맛있는 월요일] 조상들의 국수 사랑
우리 문헌에 면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건 고려 때다. 주 교수는 “원(元)나라와 관계가 깊고 무역이 활발했기에 면 요리를 받아들이는 데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실록』에서 요리책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까지 다양한 문헌이 국수를 다루고 있다. 고종이 야참으로 평양냉면을 즐겼다는 얘기도 전한다.
다만 조선시대까지 즐겨 먹던 국수는 흔히 떠올리는 밀가루로 만든 면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밀이 나던 지역이 극히 드물었던 탓에 구하기 쉬운 메밀이나 감자를 활용한 메밀국수·감자국수 등이 많았다.
이에 다산 정약용은 어원연구서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우리 조선 사람들은 재료를 따지지 않고 그저 긴 걸 국수라고 부르는데 그건 잘못됐다. 엄밀히 말하면 밀가루로 만들어야 면이라고 하는 것이다”며 당시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기도 했다.
‘평안도 평양냉면’ ‘제주도 고기국수’처럼 지역마다 국수의 개성이 뚜렷해진 건 어떤 이유일까.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평안도와 ‘막국수’로 알려진 강원도는 모두 조선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메밀이 많이 재배되던 곳이란 공통점이 있다. 당시만 해도 밀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사치재의 이미지가 커 국수를 만드는 데는 메밀을 사용했다.
메밀조차 나지 않는 지역에선 감자나 옥수수 등을 썼다. 평양냉면의 라이벌 격인 함경도 ‘함흥냉면’이 그렇다. 혹독한 기후 탓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한정됐던 함경도에선 그나마 감자가 많이 생산됐다. 그래서 감자전분으로 면을 뽑고 가자미 등을 넣어 초고추장과 매콤하게 비벼 만든 게 ‘비냉(비빔냉면)’, 즉 함흥냉면이다.
물론 밀로 만든 국수를 전혀 먹지 않았던 건 아니다. 밀이 귀하던 조선에서 작은 규모로나마 밀 재배를 한 지역이 바로 경북 안동이다. 서울에도 제법 이름을 알린 ‘안동국시’가 나온 배경이다. 주 교수는 “경북 일부 지역은 겨울에 심어 봄에 추수하는 ‘겨울 밀’이 생산된 데다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에서 ‘제사상에 국수를 올린다’는 것을 배운 안동 지역 유생들이 밀 국수를 제사상에 올리던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호남에선 들깨국수를 많이 먹었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호남은 전통적으로 들깨 소비량이 상당한 지역”이라며 “구례·순창·곡성·담양 지역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장수 벨트’로도 묶이는데 그 원인을 들깨 섭취에서 찾는 학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향토국수를 보다 손쉽게 즐길 수 있다. 곳곳에 유명 국수의 체인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에선 유명 국수들이 속속 백화점에 입점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자리 잡은 ‘안동국시’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 입점 예정인 ‘행주산성 어탕국수’가 대표적이다. 화곡동 ‘가야밀면’, 문래동 ‘제주올래국수’ 등에서도 특색 있는 국수 맛을 즐길 수 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