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도록 불과 몇 석의 유불리를 따지느라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는 여야 정당의 탈법행위는 무치(無恥)의 최대치다. 또한 주요 2개국(G2) 시대로의 진입이 한반도에서 요란한 마찰음을 내는 와중에도 여야는 쟁점 법안 처리라는 창과 필리버스터라는 방패를 들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 갈 뿐이다. 정당들에 대한 실망은 이제 “정당정치가 멸종하게 놔두자”는 비관적 칼럼이 등장하기까지에 이르렀다.<본지 3월 2일자 이훈범의 ‘세상읽기’>
위기에 맞서는 정당의 혁신 스토리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양대 정당에 대입해보자. 먼저 위기. 평범한 시민들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위기의 신호를 반복해서 감지하고 있다. 우리가 고령화, 양극화, 규제만능에 짓눌려 있는 동안 선진국 경제는 자율주행차, 가상현실, 바이오혁명 등을 선도하면서 신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평면적 한·미 동맹이 우리의 외교안보를 책임지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한반도가 미·중·일·러가 각축하는 다차원 체스판으로 성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이미 온몸으로 느끼는 거대한 변화의 회오리를 단지 정당들만 절실하게 깨닫지 못할 뿐이다.
4년 전 19대 총선을 앞두고 맞춤형 복지,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제적으로 주도하던 혁신 스토리는 더 이상 새누리당에서 찾아볼 수 없다. 변화를 외치는 혁신그룹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친박-비박의 자리 다툼만 있을 뿐이다. 야당인 더민주의 혁신 시계는 그보다도 오래된 2002년에 멈춰 서 있다. 2002년 3김 시대의 종언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경제·사회적 위기를 예민하게 인식했던 혁신그룹은 당시 새천년민주당 내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그룹이었다. 이들의 위기 감지와 혁신 노력은 최초의 대통령 후보 경선제를 거쳐 마침내 우리 정치의 기성 질서를 타파하고자 했던 노무현 현상으로 이어졌었다. 그러나 오늘날 더민주를 이끄는 김종인 대표의 노련한 정치력을 혁신으로 이해하는 더민주의 지지자는 얼마나 될까?
정당들이 위기 센서가 망가진 채 시대를 따라잡는 혁신을 해내지 못할 때 이들 앞에 놓인 선택은 대략 세 갈래 정도다. 첫째, 반(反)정치적인 선동가가 정치를 주도하고 정당은 그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이른바 정당정치의 납치 가능성이다. 요즘 미국정치를 불안하게 뒤흔드는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 좋은 사례다. 둘째, 정당이 자신들만의 생존에 미시적으로 몰두하면서 선거 때만 반짝 국고보조금과 후원금에 의지해서 활동하는 선거 머신으로 추락하는 가능성이다. 세 번째 가능성에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 있다. 70~80년대 서유럽 전후질서가 붕괴되면서 정당들도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혁신의 동력은 정당이 아닌 시민들로부터 왔다. 서유럽 시민들은 녹색운동, 양성평등운동, 평화운동 등을 통해 정당들이 외면하던 이슈를 새로이 제기하면서 아울러 공룡화된 정당들의 관료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이 결국 서유럽 정당들의 혁신의 발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과연 어느 길로 가려 하는가?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