뻑뻑해진 눈을 깜빡이며 법원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나이 지긋한 기사분은 차에 오르는 내 구깃구깃한 몰골을 흘낏 보며 물었다. “무슨 당직 선 거유?” “아뇨, 야근하느라고요.” “야근? 아니 공무원이 뭔 야근이야? 땡 퇴근하는 맛에 하는 게 공무원 아닌감? 신입 9급인가?” 판사로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아저씨.” 난 맞장구를 쳤다. 장난기도 살짝 발동하고, 구수한 말투의 아저씨께 응석 부리고 싶기도 했다. “공무원들도 이렇게 야근하고 한다는 거, 국민들이 좀 알아주시면 좋을 텐데 말예요.”
아저씨는 갑자기 정색을 하셨다. “그런 소리 마쇼. 내가 사납금 채우느라고 몇 시간째 쉬지도 못하고 운전하고 있는 줄 알아?” 무색해진 나는 얼떨결에 죄송하다고 웅얼거리고는 창밖만 쳐다보았다. 아무 말 없이 앞만 보며 운전하는 아저씨의 굽은 등에서 풍겨 나오는 무언가가 차 안 공기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내가 감히 철없는 응석을 부릴 처지가 아니라는 뒤늦은 깨달음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세상이 온통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분들로 가득한데 내가 어딜 감히….
의미 깊은 날이지만, 솔직히 직장인에게는 꿀맛 같은 휴일이기도 한 삼일절 아침에 생각해 본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