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전도연은 사랑이다 '접속'부터 '남과 여'까지, 멜로 퀸의 멜로영화

중앙일보

입력 2016.02.28 00:02

수정 2016.02.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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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의 모토가 사랑이에요. 제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그 즉시 할머니가 되고 말 걸요.” 이 낭만적인 고백은 ‘너는 내 운명’(2005, 박진표 감독)에 출연했던 전도연이 당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돌아보면 전도연은 스크린 데뷔작 ‘접속’(1997, 장윤현 감독)부터 꾸준히 그래왔다. 모습과 성질은 조금씩 다르되 결국에는 사랑의 순간들을 가장 아름답게 연기하는 ‘사랑 지상주의자’. 진한 멜로 ‘남과 여’(2월 25일 개봉, 이윤기 감독)로 돌아온 전도연이 빚어낸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을 소환했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전도연의 남자들’에 대한 그의 코멘트도 함께 모았다.
 
남과 여│사랑에 휘말리는 여자, 상민
상민의 아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자폐아다. 그런 아이를 위해 핀란드까지 온 상민은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그렇게 건조하게 메말라가던 상민을, 정확하게는 상민의 외로움을 알아본 사람은 우연히 만난 유부남 기홍(공유)이다. 닮아 있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몸을 섞었을 때, 상민은 그 일탈이 현실로는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통사고처럼 시작된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글퍼 보이는 건, 상민이 어쩔 수 없이 여자에서 엄마로 돌아가는 모든 순간들이다. 기홍과의 결정적 순간마다 상민에게는 아들의 존재를 아프게 깨달아야 하는 사건이 생긴다. 모성이라는 이름을 내던지는 ‘해피엔드’(1999, 정지우 감독)의 보라와는 달리, 상민은 아들의 곁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때마다 상민이 느끼는 공허함은 결국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도록 이끈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찾아온 불가항력의 끌림. 전도연의 연기를 통해 그 복잡한 감정의 결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누가 이 괴롭고 아픈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남자 기홍, 공유 “이 영화는 굳이 감정을 계산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 상황에 빠지게 됐거든요. 공유씨와 그런 면에서 연기 호흡이 잘 맞았어요. 제게 끊임없이 설렘을 주기도 했죠.”
무뢰한(2015, 오승욱 감독)│사랑에 속는 여자, 혜경
모두가 혜경을 속이고 이용한다. 애인 준길(박성웅)은 사람을 죽이고 도주한 뒤 혜경에게 도피 자금을 부탁하고, 준길을 잡으려는 형사 재곤(김남길)은 신분을 위장하고 혜경의 곁에 머문다. 비록 “모든 것이 싸구려인 곳”에서 술과 몸을 파는 혜경이지만 그의 순정까지 값싼 것은 아니다. 뒷골목의 거친 남자들이 득실대는 가짜의 세계에서 자신도 무뢰한이 되어 힘겹게 살아남았던 혜경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진심을 물을 때, 그 사랑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짜가 된다.

남자 재곤, 김남길 “첫인상은 동네 꼬마 같더라고요. 애교 부리는 동생 같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힘들지 않게 저의 곁을 지켜주는 오빠 같기도 했죠.”
 
멋진 하루(2008, 이윤기 감독)│사랑을 정리하는 여자, 희수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350만원. 희수는 헤어진 애인 병운(하정우)에게 빌려줬던 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 하루 동안 그와 동행한다. 모든 것이 짜증스러워 보이는 희수에게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다. 헤어진 뒤 1년 동안 부유물처럼 떠다니던 남은 감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서기 위해 최악이었던 과거를 마주하는 여자. 그 시간을 이겨낸 희수의 얼굴은, 첫 장면에서 금세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모습으로 출발해 마지막에는 입꼬리에 희미한 미소를 내건 모습으로 바뀐다. 전도연이 연기한 희수의 그 미묘한 심리 변화가 언뜻 단조롭게 보이는 이 영화의 변곡점을 만들었다.

남자 병운, 하정우 “이 역할에 정우씨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매력이 상당한 사람이라서요. 병운은 한 대 때리고 싶게 얄밉지만, 동시에 큰 매력이 필요한 캐릭터이기도 했죠.”
 
너는 내 운명│사랑받는 여자, 은하
내가 어떤 사람이든, 무엇을 하든 나만 바라보는 순수한 남자의 사랑. 계속 밀어내도 변함없는 석중(황정민)의 우직함에 시골 ‘다방 레지’ 은하의 마음도 열린다. 더없이 해맑던 은하의 미소는 야비한 전남편의 등장,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 앞에 산산조각난다.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마저 가질 수 없는 여자는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남자의 헌신 앞에서 울고 또 울 수밖에 없다. 전도연이 ‘눈물의 여왕’으로서의 진면모를 보인 영화. 동시에 그는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는 것이 단번에 납득될 만큼 사랑스러운 여인 그 자체였다.

남자 석중, 황정민 “어눌한 듯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에요.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도 상당하고요. 같이 속편을 찍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석중과 은하가 재회하는 내용으로.”
 
접속│사랑을 기다리는 여자, 수현
수많은 사람 속에 섞이면 절대로 눈에 띄지 않을 여자. 유일한 별명이자 ID마저 ‘여인2’인 수현은 평범 그 자체인 여자다. 친구의 애인을 혼자 좋아하다 상처받고, 외로움을 PC 통신으로 달래는 수현은 텅 빈 마음을 안고 언젠가 찾아올 사랑을 기다리는 모두를 대변하는 얼굴이었다. 수현에게서는 소박한 매력이 빛났다. 일상적 감정을 과장 없이 표현하는 것만으로 흡인력을 발휘하는 전도연의 연기 덕분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극의 설정상 홀로 멜로 연기를 펼쳐야 한다는 조건은 전혀 핸디캡이 되지 않았다. ‘멜로 퀸’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남자 동현, 한석규 “관객이 나를 보러 오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소한 나보다는 남자 배우에게 비중이 더 실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이 ‘와, 한석규다! 전도연은 글쎄…’라고 생각하면 어떡해요(웃음).”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