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18일 고용보험심의위원회를 열어 ‘고용·산재보험기금 책임투자 가이드라인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용역서를 보고했다.
책임투자는 투자를 할 때 재무 중심으로 판단하는 일반적 방식 대신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 공헌과 같은 비(非)재무적 요인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고용부 ‘책임투자 가이드’ 보고서
“기업가치 저해하는 경영진 견제”
정부 정책 달성 위한 수단 우려도
돈 묶일 땐 실업급여 등 못 줄 위험
이를 바탕으로 단기적으로는 주주총회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고, 중·장기적으로 주주질문권 행사, 공시 요구, 대표소송,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고용·산재보험기금의 (경영) 관여 정책은 비합리적 경영 의사결정 등으로 기업가치를 저해하는 경영진에 대한 견제 수단”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앞선 2014년 중간 용역보고서에는 “책임투자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산업재해나 심각한 고용 문제가 발생한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목적사업과 기금 운용을 연계시킬 수 있다”고 적시했다.
비정규직 고용 환경 개선, 시간제 일자리 확충,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것을 기업에 주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기업 관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관치 경영’ ‘연금사회주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광호 고용정책팀장은 “기업 경영활동을 정부 정책에 끼워 맞추도록 강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두 보험은 실업사태나 산업재해와 같은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근로자와 기업이 월급에서 떼 모은 단기 사회보험이다. 장기 적립식인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과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대량 실직사태가 발생한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실업급여가 너무 많이 지출돼 고용보험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부의 용역보고서에 나온 구상대로 두 보험기금이 운용되면 이런 위기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주식에 돈이 묶여 실업급여 미지급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주식 가격 하락으로 인한 기금 손실 가능성도 있다. 또 실업급여를 주기 위해 보유한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 주식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단기 사회보험을 책임투자에 동원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런 방식의 투자를 하고 있는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의 최근 3년간(2012~2014년) 책임투자 수익률은 전체 수익률(3.03%)의 절반도 안 되는 1.29%에 불과했다.
이광호 팀장은 “장기 투자를 전제로 한 책임투자는 단기성 사회보험의 성격을 감안할 때 기금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며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경제위기라도 닥치면 실업급여나 고용유지지원금, 임금피크제지원금, 육아·출산휴가비 미지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고용보험의 재정 상황은 법정적립배율(1.5~2배)도 맞추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법정적립배율은 지출되는 액수 대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여윳돈으로 일종의 비상금이다. 이게 지난해 1배에 그쳤다. 고용보험 중 실업급여를 주는 계정의 적립배율은 0.7배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3년 징수액을 인상해서 이 정도 선을 유지하고 있다.
고용부 장신철 고용서비스정책관은 “현재 연구용역이 완료된 상태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여러 부작용을 고려하고, 의견을 수렴해 실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