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이름은 ‘생각 주간(Think Week)’. 빌 게이츠는 이 기간 동안 TV·라디오는 물론 전화도 끊고 캘리포니아 별장에서 은둔했다. 하루 18시간 이상 책과 보고서를 읽으며 새로운 경영 전략을 구상했다. MS의 인터넷 브라우저 출시, 온라인·비디오게임 시장 진출은 모두 생각 주간에 나온 아이디어다.
설 연휴에 대기업 회장님들은…
투병 중인 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은 이번 연휴도 병원에서 맞는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을 일으켜 쓰러진 이 회장은 수술을 받은 뒤 재활치료 중이다. 장남인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은 연휴 기간 중 가족과 함께 이 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VIP실을 방문하는 일정부터 잡았다.
이후론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한남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수년째 이 부회장 주도로 추진해온 전자·바이오·스마트카 중심 사업 재편 구도를 한층 가다듬을 계획이다. 사업차 해외출장을 떠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정을 쇤 정몽구(78) 현대차그룹 회장도 한남동 자택에서 경영 전략을 구상한다. 1월 판매 실적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3.5% 줄어든 만큼 판매 부진에서 벗어날 전략을 짜는 데 몰두할 계획이다.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제네시스’와 친환경차 ‘아이오닉’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게 가장 큰 관심사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장님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연휴 기간 동안 사장단 회의를 열거나 연휴 직후 추가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 등 숨 가쁜 경영 행보를 보여 온 최태원(56) SK 회장도 한남동 자택에서 장고(長考)에 들어간다. 포럼에서 에너지·화학·반도체 분야 글로벌 리더들과 만나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에너지 신사업 발굴 같은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SK 계열사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만큼 향후 타개책과 더불어 올해 투자계획도 다시 뜯어본다.
신정을 쇤 구본무(71) LG 회장도 별도 일정을 잡지 않고 한남동 자택에서 쉬며 새해 경영 전략을 짠다. 지난해부터 강화한 자동차부품(VC) 사업 부문과 고급 가전 브랜드인 ‘시그니처’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을 구상한다.
구 회장은 최근 주재한 LG그룹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 장기 저성장시대에 대비해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사업구조를 고도화하라고 강도 높게 주문했다. 구 회장은 연휴 기간 동안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혁신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겪은 신동빈(61) 롯데 회장은 가회동 자택에서 경영 구상에 들어간다. 호텔롯데를 비롯해 롯데정보통신·코리아세븐·롯데리아 등 줄줄이 상장을 기다리고 있는 계열사 현황을 점검하고 글로벌 시장 매출 확대 전략을 가다듬을 전망이다. 올해 말로 예정된 제2롯데월드 완공도 챙긴다.
다만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맡고 있어 연휴 중간인 6∼7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리는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월드컵 행사에 참석한다.
허 회장은 동남아 시장 진출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의 전략이, 박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사업 매각을 비롯한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이 관심사다.
김승연(64) 한화 회장도 가회동 자택에서 차례를 지낸 뒤 경영 구상에 잠긴다. 그룹이 주력하는 태양광·방산·케미컬 부문 경쟁력을 끌어올릴 사업 전략을 짤 계획이다. 국내외에서 올 한 해 동안 투자키로 한 3조4000억원 규모 투자 계획도 가다듬는다.
신정 연휴부터 지난달 내내 주말마다 계열사 임직원과 동반 산행 강행군을 이어 온 박삼구(71) 금호아시아나 회장도 구정엔 한남동 자택에서 쉰다. 하지만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그룹 전반을 위기에서 끌어올릴 사업 구상에 골몰할 계획이다.
연휴를 잊고 뛰는 CEO도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양호(67) 한진 회장이다. 신정 연휴에도 강원도 평창 공사 현장을 찾았던 조 회장은 이번에도 현장을 점검한다.
신동빈 회장이 6~7일 참석하는 스키월드컵 행사장에 조 회장도 함께하며 시설과 운영 사항을 챙길 계획이다. 틈틈이 저비용항공사(LCC)의 파상 공세에 맞설 항공 서비스 고급화 전략을 구상한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