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풍요 속의 위기는 무엇 때문인가. 애플의 수장인 팀 쿡은 최고의 실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전 세계의 투자가는 그에게 “그런데, 그 다음은?”이라고 묻고 있다. 최고의 기업에 찾아온 위기, 그것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백세 시대가 펼쳐진다는 지금, 우리는 미래에 불안해한다.
최고 기업 애플에 찾아온 위기
패러다임 시프트 실패한 팀 쿡
합리적 모험가 역할 하는 구글
우리의 기업은 미래를 보는가
생산적 창조,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미래는 현재를 지배한다. 당연히 세계는 애플과 같은 일류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끌기를 바란다. 하지만 ‘관리형’ 기업가인 팀 쿡은 안정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집착했다. 이미 한참을 파던 우물을 더 파내기만 하고 새 물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우리 기업도 마찬가지다. 요즘 각종 ‘페이’가 넘쳐난다. 전자상거래의 개인화가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글로벌 경쟁에 놓인 우리나라 기업도 모두 이 ‘페이’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이 ‘페이’가 생활을 바꾸어 놓을 핵심 요소인가. 필자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상품 구입과 지불 관계에 끼어든 대체재일 뿐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과거 레코드판을 사고 CD를 구입해 음악을 소유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음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음악 콘텐트에 ‘액세스’하는 권한을 산다. 음악의 소유에서 콘텐트의 액세스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어 버림으로써 음악 감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고, 스티브 잡스는 이 부분을 잡아냈던 것이다.
며칠 전 구글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국을 성사시켰다. 인공지능이 최고의 프로기사에게 이길 정도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승패를 넘어 그 과정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구글은 온 세계인이 초고속통신과 스마트폰을 통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을 지켜보도록 함으로써 새 인공지능을 선보이는 것이다. 구글이 애플의 기업가치를 넘어선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구글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패러다임 시프터를 자임하면서 합리적인 모험가 역할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이 소비자에게 직접 팔고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구글이 미래에 만들어낼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래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정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꿀 그 무엇인가가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선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필두로 ‘X-프로젝트’와 같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 여러 개 있다. 여기에다 최근 이들 대기업 간에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들의 전략적 투자 부문이 바뀌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재편이 미래를 내다보고 진행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장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답답할 때가 적지 않다. 어느 때보다 구글처럼 생산적 창조,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대담한 도전이 절실하다. 미래를 창조하려는 기업이 현재를 지배하는 시대다.
서효중 가톨릭대 교수·컴퓨터정보공학부 융·복합전공 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