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시작이었다. 암전 속에서 무대에 환하게 조명이 켜질 때 긴장과 흥분으로 심장이 사정없이 쿵쾅대던 느낌에 송두리째 사로잡혀 버렸다. 대학에 들어가기 무섭게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과 대학로 연우소극장 등지를 뻔질나게 드나들다 급기야 연극배우, 그것도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맹랑한 꿈을 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극단 입단을 조르다 부모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나선 그만 맥없이 생애 첫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음 생엔 ‘백인 남자’ 되고 싶다니…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젊음의 특권 돌려줘야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가장 알고 싶었던 것도 덕선의 남편감이 아니라 장래 직업이었다. 의사나 조종사를 꿈꾸는 친구들과 달리 고3 때까지도 아무 꿈이 없던 덕선의 앞날이 궁금했던 거다. 마침내 1994년으로 극중 시간이 훌쩍 건너뛰자 그녀는 당시 여성들 사이에 최고 인기 직종 중 하나였던 스튜어디스가 되어 떡하니 나타난다. 건강한 신체와 환한 미소, 타고난 사교성의 소유자란 걸 고려하면 꽤나 그럴싸한 선택이다. 88올림픽 개막식에 우간다 피켓걸로 참여했던 스펙으로 가산점도 쏠쏠히 받았으리라. 전교 999등이던 덕선이 몇 년 만에 ‘토익 700점 받은 여자’가 된 대목이 좀 걸리긴 하지만 경험칙상 수학은 몰라도 영어는 피나게 노력하면 일취월장이 가능하지 않던가.
1988년엔 꿈이 없는 청춘이 드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젊은이들이 주변에 차고 넘친다. 오로지 점수에 맞춰 대학 전공을 고르고, 이후엔 전공과 상관없이 ‘삼성 고시’와 9급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렇게 너나없이 한 줄로 서서 경쟁하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 앞에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자조하는 아이들. 그네들에게 꿈을 묻는 건 어쩌면 큰 실례인지 모른다. 흡사 나이나 몸무게, 아파트 평수를 대놓고 물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번 생엔 희망이 없다는 우리 청년 세대에게 다음 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남녀 불문하고 ‘키 크고 잘생긴 서구의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되는 일 하나 없는 자신과 달리 뭐든지 할 수 있는 만능 스펙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나. 응팔 세대인 덕선은 꿈이 없어도 노력 끝에 폼 나는 일을 하게 된 반면 2016년의 아이들은 어차피 ‘노오력’해도 안 될 거란 패배감에 젖어 감히 꿈조차 품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꿈만은 원 없이 꿔봤던 우리 부모 세대가 이제 젊은이들의 꿈을 있는 힘껏 응원해 줄 차례다. 아무리 무모해 보여도 지레 포기하라고 하지 말자. 현실성이란 잣대로 아이들을 죄다 한길로 몰아넣은 결과 유례없는 ‘꿈의 집단 상실 사태’를 불러왔으니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누구나 이상(理想)을 잃어버릴 때 늙어 가나니’(새뮤얼 울먼 ‘청춘’ 중). 가뜩이나 빠르게 늙어 가는 나라에서 청춘마저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 가서야 되겠나.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