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시선 2035] 마음보다 시간만 뺏는 낡디낡은 길거리 전도

중앙일보

입력 2016.01.29 01:16

수정 2016.01.2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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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저기요….” 강남역 근처나 신촌 거리를 걷고 있으면 누군가 한번쯤은 말을 건다. 길을 묻는 어르신이나 우연히 만난 친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십중팔구 인상이 좋아 보인다거나 좋은 말씀 들어보라는 식의 ‘도입부’로 이어진다. 특히 30~40대 남녀 혹은 여성이 짝을 지어 다니다가 갑자기 다가온다면 ‘백프로’ 종교 얘기다. 대부분의 사람은 피하지만 자칫 대답이라도 했다간 여간해서 놔주지 않는다. 운 나쁘면 10분 이상 꼼짝없이 설교를 들어야 한다.

캠퍼스도 예외는 아니다. 여러 대학에서 길거리 전도에 따른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선 ‘학내 전도 제재’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기숙사까지 막무가내로 전도하러 들어가는 행위는 청원경찰과 함께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는 “기독교인인 나도 하루에 서너 번씩 전도당하면 짜증이 난다. 심지어 전도하려고 기숙사 방문을 두드리고 가는 사람도 있다. 공약 추진에 대한 학내 여론은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일상처럼 흔한 길거리 전도는 실제론 ‘응답하라 1988’ 같은 선교 방식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전도사가 길거리에서 주던 팸플릿으로 재미를 보았다. 실제 교인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쌍방향인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엔 달라졌다. 매체가 많아져 전도 효과가 줄어든 데다 되레 반감을 줄 수 있어 대부분의 교단이 낡은 전도 방식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일부 교단이 옛 방식을 붙잡고 여전히 극성을 부린다. 말하는 쪽은 자신의 논리만 내뱉고, 듣는 쪽은 전혀 받아들일 기색이 없다. 인터넷엔 조롱조의 ‘사이비 전도’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얼굴에 마(魔)가 끼었다고 하길래 동행했더니 “액땜을 해야 한다”며 수백만원을 뜯어낼 기세였다는 경험담이 넘친다.

미국과 유럽에선 이런 갈등이 거의 없다. 길거리 전도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만 보수적 색채가 짙게 남아 개인의 사생활과 선교(전도)의 자유가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우리 아니면 모두 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19세기 식민지에서 유럽 선교사들의 전도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관계자는 “전도 방식도 문제지만 종교 자체가 신뢰를 잃은 탓도 있다”고 말했다.


전도(傳道)는 한자 그대로 ‘도리를 널리 알린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이뤄지는 과잉 전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되레 잃고 있다. 시간을 뺏는 게 아니라 마음을 뺏는 방법은 어떨까. 추운 겨울, 행인에게 자연스레 커피 권하면서 이야길 들어주는 교회 할머니가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보다 마음을 녹이는 법이다.

정종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