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구즉묵밥, 통옥수수빵, 땡초어묵 … 향토 별미 다 모였군요

중앙일보

입력 2016.01.29 00:02

수정 2016.01.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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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맛있게 변신하는 기차역
 

서울역 선상통로에 들어선 도시락 집들.


서울에서 부산을 2시간 30분 안에 주파하는 고속열차의 시대라지만, 기차여행의 낭만과 설렘은 완행열차 시대 그대로인 것 같다. 기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달걀과 사이다 같이 평범한 음식도 기차 안에서는 맛이 특별했다. 그러나 이제는 옛 이야기인 것 같다. 기차역이 ‘맛있는’ 변신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개성 뚜렷한 이색 음식점은 물론이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맛집이 기차역에 둥지를 틀고 여행객을 반기고 있다. 호화 도시락부터 유명 베이커리의 소보로까지, 새로운 맛의 추억을 안겨줄 기차여행 먹거리를 소개한다.

 


기차 도시락의 무한 변신
서울역  
 
다미연 불고기 도시락.
레일락 청매실 떡갈비.
도시락은 기차여행에 최적화된 메뉴다.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고 든든한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현재 운행 중인 모든 기차에서 열차 도시락 ‘레일락’을 판매한다. 코레일관광개발이 특급호텔 ‘더 플라자’와 함께 개발한 도시락이다. 지난해에만 54만 개가 팔렸다. 청매실 떡갈비(1만원)와 제육불고기(5000원)가 제일 잘 나간다. 전화(02-2084-7777)나 코레일 기차 예매 홈페이지(letskorail.com)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인터넷 예약은 코레일 회원만 가능하다. 예약은 탑승 하루 전 오후 6시까지 마쳐야 한다.

하루 15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역은 도시락 업체의 각축장이다. 2013년 서울역 맞이방(대합실)과 승강장 사이 선상통로에 도시락 가게 8개가 들어섰다. 임헌명(47) 코레일유통 기획조정팀장은 “선상통로에 가스관이 설치되면서 즉석 조리한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맛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역의 꼬꼬마김밥 가게.


서울역 타는 곳 11번 입구 옆 ‘꼬꼬마김밥’은 서울 광장시장의 인기 메뉴 ‘마약김밥’을 본 뜬 김밥을 판다. 서울역 주변 주민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하루 800박스(1박스 5개 들이)가 팔린다. 3000원.

호토모토 특선 도시락.


‘호토모토’는 한해 3억 개 이상의 도시락을 판매한다는 일본의 도시락 브랜드다. 타는 곳 7번 입구 옆에 입점했다. 6개 종류 중에서 새우튀김과 연어구이를 곁들인 호토모토 특선 도시락의 맛이 호화롭다. 9000원. 타는 곳 6번 입구 옆에는 한식도시락 전문점 ‘다미연’이 있다. 불고기도시락(9000원)은 즉석에서 볶은 불고기를 반찬으로 담아줘 평판이 좋다.
 

쿠벤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구운 명란 도시락.


롯데마트 서울역점에는 일본 열차 도시락 에키벤(驛弁)을 재현한 도시락 업체 ‘쿠벤’이 있다. 메뉴 개발팀이 일본 곳곳에서 에키벤을 맛보고 레시피를 개발했다. 나고야(名古屋)역 에비후라이(새우튀김) 벤또(8000원), 도쿄(東京)역 함박고로케 벤또(8000원) 등을 고를 수 있다.


호남선이 출발하는 용산역에는 도시락 전문 업체가 없다. 대신 용산역을 끼고 있는 현대아이파크몰에 입점한 식당에서 도시락을 살 수 있다.

불고기브라더스와 사보텐이 대표적이다. 불고기브라더스의 도시락 메뉴는 7개다. 버섯불고기 도시락(1만6900원)의 인기가 좋다. 사보텐은 고객의 20%가 도시락 메뉴를 사간다. 사보텐 정식 1만5000원.


식도락 여행의 시작과 끝
부산역
 

 
삼진어묵.
삼진어묵.

부산은 미항(美港)이기 전에 미항(味港)이다. 부산에는 명성 자자한 향토 먹거리가 널려 있다. 꼭 도시를 누비지 않고도 부산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부산 여행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부산역으로 향하면 된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어묵 제조업체 ‘삼진어묵’이 부산역의 맛 대장이다. 2014년 부산역 2층 맞이방에 직영점을 열었는데, 30㎡도 안 되는 작은 가게에서 한 달 13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국 기차역 입점 업체 가운데 최고 매출 규모다.

삼진어묵은 어묵고로케·어묵튀김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를 선보인다. 최고 인기품목은 고추를 넣어 매운맛을 살린 땡초어묵(500원)으로, 하루 1500개가 팔린다. 삼진어묵 부산역점 손호진(37) 매니저는 “주말에는 어묵을 고르고 결제하기까지 1시간이 걸리다 보니 삼진어묵을 사기 위해 기차 출발시간보다 일찍 역을 찾아오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오뎅.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로 허룩한 속을 달래고 싶다면 부산역 맞이방 입구 쪽 ‘부산오뎅’으로 향하면 된다. 부산오뎅은 2010년 부산역에서 출발한 분식점으로 어묵과 떡볶이를 판다. 요기하려는 사람이 모여들어 하루 어묵 3000개가 꼬치에 꿰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부산 토박이는 ‘물오뎅(떡)’을 즐긴다. 어묵 1개 1000원.
 

유부전골.


부산역에서는 시장에서 사먹던 간식도 맛볼 수 있다. 국제시장의 명물 ‘깡통할매 유부전골’이 대표적이다. 국제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해 온 정선애(79) 할머니의 전매특허 메뉴다. 당면·쇠고기 등을 넣은 유부주머니를 가다랑어포를 우린 국물과 함께 내놓는다. 유부주머니 4개가 들어 있는 유부전골 한 그릇이면 배가 든든해진다. 유부전골 5000원.
 

승기호떡.


‘승기찹쌀씨앗호떡’은 가수 이승기가 먹는 모습이 방송을 탄 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부산 남포동 비프(BIFF) 광장의 호떡 노점이다. 할매호떡으로 불리다가 2011년 법인을 내고 가맹점을 냈다. 2014년 부산역 2층에도 점포를 냈다. 비프 광장에서는 한 사람이 한 개밖에 못 사지만, 부산역에서는 마음껏 살 수 있다. 호떡 안에 땅콩·아몬드·호박씨 등 견과류를 듬뿍 넣어줘 고소하다. 씨앗호떡 1500원.


되살아난 가락국수의 추억
대전역

 
대전역 쁘띠박스.
대전역 쁘띠박스 한 입 도시락. 원하는 맛을 고르면 박스에 담아준다.
대전역 쁘띠박스의 라이스 고로케.
     
대전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다.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들어섰고, 1914년 대전역을 분기점으로 호남선이 개통됐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대전역에서 교차하면서 환승객이 몰렸고 덩달아 열차의 정차시간도 길어졌다. 그 늘어난 정차시간을 틈타 승객이 승강장에 내려 가락국수를 먹었다.

 

대전역 가락국수.

78년 대전역과 서대전역을 연결하는 대전선이 들어선 뒤로는 호남선 승객 대부분이 서대전역을 이용했다. 이에 따라 대전역의 열차 정차시간도 줄어 들었고 가락국수 이용객도 감소했다. 결국 대전역 가락국수는 2004년 고속철도(KTX)가 개통하면서는 아예 사라졌다. 그 가락국수가 부활했다. 허연석(50) 코레일유통 충청본부 사업팀장은 “가락국수를 그리워하는 승객이 많아 2013년 대전역 맞이방에 ‘대전역 가락국수’ 매장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담아낸 국수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리움이 깃들어 맛이 풋풋하다. 정거장 가락국수 4500원.


전국구 스타가 된 대전 명물 빵집 ‘성심당’도 대전역과 뗄 수 없는 내력을 자랑한다. 올해 개점 60주년을 맞은 성심당은 대전역 앞 작은 찐빵 가게로 출발했다. 이후 대전 은행동으로 본점을 이전하고, 2013년 대전역에 직영점을 냈다. 대전역점에서는 60종류의 빵을 판매하는데, 튀김소보로(1500원)와 부추빵(1800원) 계산대는 따로 있다. 각각 하루 1만개, 5000개씩 불티나게 팔리는 성심당 대표 메뉴다.
 
대전 향토음식 구즉묵밥.
대전역에 있는 구즉묵밥집.

대전역에서는 대전 향토음식 구즉묵도 맛볼 수 있다. 구즉묵은 40여 년 전부터 대전 봉산동 구즉마을에서 쑨 도토리묵의 별칭이다. 100% 국산 도토리 가루로 묵을 빚어 유난히 부드럽다. 구즉마을 주민이 영농조합을 설립하고 2014년 대전역에 구즉여울묵식당을 냈다. 면발처럼 썬 묵을 멸치 국물에 토렴한 도토리묵채밥(6500원)이 대표 메뉴다.


지역 특산물도 판매
대구역
   
 
삼송빵집 대표 빵 통옥수수빵.
삼송빵집.
동대구역은 하루 5만 명이 이용하는 대형 기차역이다. 서울∼부산을 오가는 경부선을 비롯해 진주·마산으로 이어지는 경전선, 구미·포항을 연결하는 동해선이 동대구역을 지난다. 하루 종일 승강장이 북적이는 이유다.

동대구역 맞이방에는 기차 갈아타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들른다는 빵집이 있다. 1957년 대구 대신동에서 출발한 ‘삼송빵집’이다. 지난해 동대구역에 직영점을 연 뒤로 삼송빵집은 한 달 매출 1억5000만 원을 올리는 동대구역 최고 인기 매장이 됐다. 10명 중 7명이 사가는 메뉴가 통옥수수빵이다. 삼송빵집 창업주의 손자 박성욱(49) 삼송빵집 대표가 86년 개발했다. 박 대표는 “프렌차이즈 베이커리의 공세에도 작은 빵집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빵”이라고 소개했다. 옥수수 알갱이가 한 가득 들어있어 달짝지근하다. 통옥수수빵 1600원.
 

동대구역 고로케 전문점 반월당고로케.


고로케 전문점 ‘반월당고로케’가 시작된 곳도 대구다. 동대구역에 직영점을 두고 있다. 속 재료에 직접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일본식 고로케와 달리 밀가루 반죽에 속 재료를 담아서 튀겨낸다. 하루 2000여 개가 팔리는데 16가지 맛 중에서 치즈맛이 가장 인기가 있단다. 반월당고로케 강철희(61) 부사장은 “반죽에 쌀가루를 넣어서 튀기기 때문에 기름을 적게 먹고 맛이 담백하다”고 말했다. 고로케 2000원.

경북 청도 특산품 반건시곶감.


동대구역에서는 경북 청도 특산물 쇼핑도 가능하다. 청도 도주영농조합법인이 동대구역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씨 없는 감을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말린 감말랭이는 명절 때 200박스 이상 팔린다.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도록 감을 저온에 숙성시키는 것이 비법이다. 1박스(200g)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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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양보라·홍지연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