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분자생물학 유니트’(Molecular Biology Unit)는 작은 규모의 연구실임에도 불구하고, DNA와 단백질의 구조 규명으로 4명의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유니트’를 이끌던 맥스 페루스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의학연구위원회'(MRC)의 책임자였던 해롤드 힘스워스를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분자생물학실험실’(LMB)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십수명의 노벨상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MRC는 정부 연구비를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힘스워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미래부와 교육부의 연구예산을 관리하는 ‘한국연구재단’의 이사장 혹은 복지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의 원장 정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힘스워스는 정부에 의해 임명되는 準공무원의 위치에 있었다. 힘스워스는 당뇨병에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밝힌 저명한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과학적 이해와 혜안을 갖춘 사람이었다.
힘스워스는 MRC 예산의 생성과 배분과정을 간소화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와 비교해보자. 미래부나 산업부 등 집행부처가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으면, 산하기관과 전문가들을 활용해서 기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재부에 예산을 요구한다. 덩치가 큰 사업의 경우 기재부는 이를 정부 산하 다른 기관에 맡겨 타당성 조사를 하고 예산을 책정한다. 국회 승인 후 기재부는 해당 예산을 부처에 주고, 부처는 산하 기관을 통해 연구자들에게 예산을 배분한다.
그런데 힘스워스는 MRC의 예산을 재무부(Treasury)와 직접 협상해서 받아냈다. 관의 개입과 산하기관을 거치는 단계가 없어지는 행정 간소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힘스워스는 정부가 설정한 거시정책 범위 내에서는 본인이 직접 사업을 만들고 예산을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우리나라 식으로 얘기하자면 한국연구재단의 이사장이 기재부와 직접 협상하여 돈을 얻어내고, 어디에 투자할지를 결정한 것이다. MRC는 30여명에 이르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힘스워스와 MRC의 성공 스토리에는 시사점이 많다. 예산의 생성과 배분 절차가 간단했다는 점, 非전문가인 공무원의 개입이 거의 없었다는 점, 힘스워스 자신이 의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었고 무려 19년 동안이나 MRC의 책임자로 있었다는 점,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연구환경을 유도했다는 점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산의 생성과 배분 과정이 수많은 절차로 복잡하여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거의 모든 단계가 실적에 목말라하는 공무원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연구비 배분 과정에서 권력과 이권이 개입할 소지가 높아 공평성 시비가 끊이질 않으니, 과학기술계는 정부사업에서 민원과 투서가 가장 빈번하다는 오명까지 안게 되었다. 반면 감사원과 국회는 1%도 안 되는 부정을 잡겠다고 99%의 과학인들에게 불필요한 규제를 가하며 각종 서류작업을 요구하고, 언론은 과장된 스토리를 양산하여 연구 환경을 더욱 위축시킨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연구기관장들은 3년 단위로 바뀌니 중장기 사업이 어렵고 단기실적에 연연하게 된다. 한마디로 악순환 구조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을만한 업적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려면 정부가 힘스워스와 같은 사람을 뽑아, 그에게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산 배분권을 권력으로 간주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는 정부 최고위 리더쉽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