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에 따르면 양강도 출신인 김영철은 김일성군사종합대 졸업 후 1962년 인민군 15사단 DMZ 민경중대 근무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68년엔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로 미국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당시 연락장교로 근무했다. 89년부터는 군부에서 대남 업무에 본격 관여하며 남북 군사회담 대표로 나섰다.
대남협상 수차례, 강온전략 능란
거짓말 협박하다 도와달라 읍소
김정은 개인 군사교습하며 신임
목함지뢰 도발 문책 당한 뒤 재기
회담장에선 언성을 높이다가도 휴식 시간에 기자들이 회담장에 들어오면 웃으며 환담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정찰총국장 김영철’과 ‘통전부장 김영철’이 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도 “김영철은 두 얼굴의 야누스 같은 인물”이라며 “대남협상 경험이 풍부한 그가 강온 전략을 넘나들 수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이를 알고 그를 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에 다니던 시절 개인 교습을 해주며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09년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장 자리에 오른 김영철은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이듬해인 2012년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후 대장→중장→대장→상장을 오가며 부침을 겪기도 했다. 김정은이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 한 결과다.
지난해 8월 DMZ 목함지뢰 도발은 그가 대장 계급을 다시 단 직후 충성심을 보이기 위한 도발이라고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남측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김영철은 문책을 당했다.
김양건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8·25 합의로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확성기 문제를 해결했다”는 공로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김영철이 다시 강등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 행사에서 김정은과 함께 주석단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