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놈 다 같이 죽이고 싶다” 이태원 피해자 어머니 절규

중앙일보

입력 2016.01.15 02:30

수정 2016.01.1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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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두 놈 다 같이 죽이고 싶다. 그래야 응어리가 풀릴 것 같다.”

 14일 오후 5시30분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 사건’의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4·사진)씨가 말문을 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피고인 아서 존 패터슨(37)에 대한 재판에서다.

74세 노모 한맺힌 법정 진술
“재미로 사람 죽인 이들 풀어줘
우리나라 법이 이런 법입니까”

이씨는 나흘간의 집중심리 재판 중 사흘째를 맞아 피해자 대표로 진술권을 행사했다. 검찰이 예정에 없던 에드워드 건 리(37)까지 증인으로 불러내는 바람에 이씨는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동시에 바라봐야 했다. 19년 전인 조씨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이다.

이씨의 차례는 에드워드 리가 “그 당시 일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패터슨 측이 “패터슨은 범인이 아니다”는 취지의 증언을 지루하게 한 뒤에서야 찾아왔다.

 이씨가 증인석에 다다르자 재판장은 “피고인 앞에서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해야죠.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죠”라며 손수 글을 적어온 흰 종이 서너 장을 꺼냈다. 중간중간 “에휴, 에휴”하는 작은 탄식이 섞였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화목하게, 행복하게 3대가 모여 살던 우리의 행복은 1997년 4월 3일 ‘그 사건’ 이후 끝났습니다. 요 며칠 법정에 나와 사건 기록들을 다시 보니 더욱 기가 막힙니다. 17살 먹은 사람들이 재미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건 중필이만 죽인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죽인 것입니다.”

 잠시 숨을 쉰 이씨가 말했다. “우리나라 사법은 한 사람은 특별사면(패터슨)으로, 한 사람은 무죄(에드워드)로 풀어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74일이 지나면 우리 아들이 죽은 지 만 19년이 됩니다. 22년 동안 욕도 한 번 안 하고 상장·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 우리 착한 중필이…. 어미로서 너무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18년 동안 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애초에 재판이 잘됐으면, 검사가 좀 더 꼼꼼히 조사했더라면….”

 이씨는 “이후 아들의 사연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남편과 나는 차마 시사회에 갈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에는 과학적으로 조사해서 꼭 범인을 밝혀 달라”는 당부로 끝맺었다. 이씨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진술을 마치고 재판장과 검사 등에게 허리 숙여 세 번 인사한 이씨는 법정을 나와서야 간이 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집중심리 첫날인 지난 12일, 재판정에선 고성이 오갔다. 패터슨 변호인인 오병주 변호사가 “지난 재판 휴정 시간,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저에게 ‘죽인다’고 위협한 적 있죠”라고 묻자 에드워드의 아버지가 “거짓말”이라고 반발하면서다. 이 사건 결심공판은 15일 열린다.

임장혁·정혁준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