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 배우' 황정민(46) 전성시대다.
지난해 '국제시장' '베테랑'으로 잇따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히말라야'도 700만 명을 넘어섰다. 3연타석 대형 홈런이다. 40대 중반을 넘긴 배우의 경이적인 흥행 기록이다. 곧이어 강동원과 호흡을 맞춘 '검사외전' 개봉도 눈 앞이다.
특히 그를 유독 돋보이게 한 건 '말'이었다. 2005년 청룡영화제의 '밥상' 소감은 지금까지도 역대급 수상 멘트로 회자되고 있다. '베테랑'에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란 대사로 관객의 가슴을 뻥 뚫어줬다.
그렇다면 배우 황정민에게 영감을 준 대사는 무엇일까. 그가 직접 영화 속 명대사 7선을 뽑았다. 해외 남자 배우의 명연기·명장면이 우선 꼽혔고, 자신의 출연작 중엔 의외의(?) 두 작품이 포함됐다.
1.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죽은 시인의 사회' 중)
10년 이상 무명 생활을 견뎌야 했던 그로서도 자신과의 싸움이 각별했을지 모른다.
1989년 작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감독)에서 키팅 선생은 파격적인 수업 방식으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오늘을 살라"고 주문한다. 황정민은 "무엇보다 로빈 윌리엄스의 살아있는 눈빛에 흠뻑 빠졌다"고 전했다.
2. "매직 아워를 놓쳤을 때 대처하는 법을 아나? 간단하다. 내일을 기다리는 거다."('매직 아워' 중)
인연도 적지 않다. 현재 황정민이 주연·연출하고 있는 뮤지컬 '오케피'도 미타니 원작이다. 2008년 황정민이 출연했던 '웃음의 대학'도 "미타니 극본이기에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고 했다.
미타니는 기발하고 정교한 플롯으로 허를 찌른다. 여기에 실소를 짓게 하면서도 가끔씩 눈물을 머금게 하는 대사는 백미다. 황정민은 "절망 보단 긍정을 찾아내려는 노배우의 연기가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했다"고 말했다.
3.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부당 거래' 중)
흥미로운 건 자신이 연기한 최철기 반장이 아닌, 류승범이 연기한 주양 검사의 말을 명대사로 꼽았다는 점이다.
류승범은 특유의 냉소적인 표정으로 이 대목을 연기한다. 황정민은 "최반장의 고독함도 좋았지만, 머릿속을 계속 맴돈 건 주검사의 말"이라고 했다.
4. "내 죽음이 부모들에게 위안이 됐으면 해요."('데드맨 워킹' 중)
황정민은 "숀 펜의 열혈 팬으로서 그의 주름이 좋다"며 "이 작품을 보고 배우가 늙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서 숀 펜과 수전 서랜든이 나누는 절절한 대화만큼, 이후 건조하게 포착한 사형 집행 과정도 인상적이다.
5. "몸이 사라져 버려요, 마치 전기처럼."('빌리 엘리어트' 중)
황정민은 "아내와 영화관에서 질질 짜면서 봤다"라며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면접관이 마지막에 '춤출 때 어떤 기분이니'라고 묻자, 머뭇거리던 빌리의 답이 일품"이라며 꽤 길었던 대사를 일일이 기억해냈다. "빌리의 'electricity'라는 말에 내 몸까지 전율이 흘렀다"고도 했다.
6. "쇠문을 여는 것은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입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중)
영화는 자신을 진짜 슈퍼맨이라고 믿는 엉뚱한 남자와 그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방송 PD(전지현)의 스토리다. 거대 담론이 난무하는 사회에 하찮음과 사소함의 본래적 의미를 되새겨준다. 황정민은 "비록 흥행은 안됐지만, 유독 애잔하게 오래 남아 있다"고 말했다.
7.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모든 걸 다 잃어봐야 돼"('파이트 클럽' 중)
영화는 1999년 작이다. 황정민은 "당시는 영화 배우로 데뷔전이었다. 연기도 삶도 꿈도 엉켜있던,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때 위안이 됐다"고 했다.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TV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로도 유명하다. 황정민은 "데이비드 핀처 영화는 다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유독 강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