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유두종 바이러스는 대부분 성 접촉을 통해 사람의 점막 표면에 침투한다. 물론 인체의 면역체계는 HPV에 대한 방어 기능을 한다. 하지만 감염된 여성의 대부분이 HPV에 의한 자궁경부암과 그 밖에 생식기사마귀, 항문암 등 각종 질환에 노출된다. 편의상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명명하고는 있지만 이는 협의의 개념이다. 자궁경부암은 HPV 질환이라는 ‘숲의 일부’라는 의미다. 따라서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생식기감염 질환을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접종체계가 필요하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HPV 백신’으로 부르고 있다.
HPV 질환의 범위를 자궁경부암에 국한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HPV로 인해 발병하는 질환은 자궁경부암 외에도 질암, 외음부암, 항문암, 생식기사마귀 등 다양하며, 그로 인한 질병 부담이 커지고 있다. 영국에서도 이런 다양한 HPV 질환을 고려해 NIP에 4가 HPV백신(가다실) 을 선정했다.
HPV 백신은 세계적으로 130여 개 나라에서 승인됐다. 그 중 HPV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64개국이다. 이 중 대다수가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기타 HPV 질환에 대한 예방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NIP에 HPV 백신을 도입하고 있는 호주의 경우에도 생식기사마귀 발생이 박멸 수준으로 감소했다. 시작 2년 만에 고등급 상피내종양 발생 위험은 80%까지 감소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HPV 감염 건수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HPV 예방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올해부터 정부는 2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기타 HPV 관련 질환에 대한 스크리닝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자궁경부암 외 기타 HPV 질환에 대한 방어선이 미비한 셈이다. NIP 정책을 맡고 있는 보건당국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모든 HPV 질환을 포괄하는 국가예방사업을 검토해 주기를 기대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부인암센터 김영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