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 속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젠틀맨’. 북한이 30일 사망 사실을 공개한 북한의 대남총책 김양건 노동당 비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느낌이다.
김 비서는 지난해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용해 당 비서와 함께였다. 북한 권력 실세 3인방의 남한 방문이었다. 현장 취재를 맡은 기자는 당시 김양건의 남한 체류 전 일정을 함께했다. 김양건은 12시간 동안 인천에 머물며 대남 정세에 밝다는 점을 드러내며,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다. 첫 남한 방문을 어색해하며 긴장을 풀지 못하던 황병서·최용해와 달랐다. 취재진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김정은, 김양건 부인에게 “이모”
이설주와 눈 맞추고 대화하기도
김양건은 김일성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북한 노동당 국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통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1997년 4월 당 국제부장에 올랐다. 하지만 10년 만인 2007년 3월에는 대남사업을 관장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변신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그는 다른 간부들과 달리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거나 좌천·숙청을 겪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 등 다른 형제를 제치고 후계자로 옹립되는 데 그가 기여했기 때문이란 게 대북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김양건의 부인이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와 가까워 김정은이 ‘이모’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어려운 시기 생모와 자신을 도와 후계 권력을 거머쥘 수 있게 기여한 김양건에 대해 김정은으로선 각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을 단골 수행할 때도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다른 간부들과는 달랐다. 2년 전 처형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죄목’에 포함된 짝다리 짚는 모습을 김양건이 스스럼없이 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런 정황 때문에 김양건은 명목상의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뒤를 이을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남북관계에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새해 집권 5년 차를 맞는 김정은 권력의 핵심에서도 하차했다.
서재준 기자 suh.jaej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