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색, 중국 경계 … 동북아 외교 지형도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2015.12.30 03:36

수정 2015.12.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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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左), 라이스(右)

수전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8일(현지시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미국은 한·일이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finally and irreversibly)’ 합의에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며 “우리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진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환영 성명이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임을 명확히 한 합의를 이끌어낸 한·일 지도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① 미·중 입장 극명하게 갈려= 이처럼 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협상 타결은 다시 논란이 될 수 없는 합의라는 데 방점을 뒀다.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이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죄와 반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뉴스분석]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 외교
① 미국, 논란 없는 협상 타결에 방점
② 한·미·일 공조 강화되나
③ 아베 ‘공격형 외교’ 예상
④ 한·중, 남북 관계엔 악재

 반면 중국 신화통신은 29일 “이번 합의는 미국의 압력 속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선택이며 유감”이라고 밝혔다. 전날(28일)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합의에 대한 평가 대신 “위안부 강제징용은 일본 군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 국가들에 한 반인도적 범죄행위”라고 비난만 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미국의 ‘반색’과 중국의 ‘유감’은 2016년 한국 외교가 맞닥뜨릴 새로운 도전이다. 한·미·일 공조를 염두에 둔 미국의 구상, 과거사 문제를 해결한 일본의 공격 외교, 그걸 불편해하는 중국의 견제가 위안부 문제 해결 이후 펼쳐질 새로운 외교 지형이라서다.

 ② 미국 "갈등의 고리 풀렸다”=미국이 이번 합의를 반기는 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펴는 데 꼭 필요한 두 동맹국 사이에 놓인 갈등의 고리가 풀렸기 때문이다. 껄끄러운 문제가 해결됐으니 3각 협력을 강화하자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한국은 3각 안보 협력 강화와 관련해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 때문에 함께 파트너로 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댈 수 있었으나 이제 핑계를 댈 여지가 없어졌다”며 “미국으로선 한·일 정보교류협정 체결이나 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서의 한·일 협력 등에 한국이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 자위대 역할 확대 노릴 듯=미·일 밀월관계도 가속화할 수 있다. 국립외교원 조양현 교수는 “아베 내각은 올해 정비된 안보법제와,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근거로 내년엔 글로벌 차원에서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추구할 것”이라며 “특히 자위대와 미군의 공동 훈련·연습 및 공동의 정보 수집, 정찰 활동 확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중국과는 협력이 필요한 분야에 실리적 접근을 하면서도, 전략적 갈등과 긴장을 지속하는 ‘소극적 안정화’ 관계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동북아에서 중·일 간 패권다툼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외교가에선 일본 입장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호재가 될 것이라고 꼽았다. 한 소식통은 “아베 총리는 평화유지군(PKO) 활동 등을 통해 유엔에 기여하면서 틈날 때마다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려왔는데, 이번 합의로 평화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상임이사국 확대 자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미국도 일찌감치 찬성 입장을 표한 데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공을 내세워 다시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할 경우 셈법은 복잡해질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와 안보리 상임이사국 건은 별개”라고 주장했다.

 ④ 불편한 심기 드러낸 중국·북한=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중국에 어떤 전략을 쓸지도 한국의 과제다.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복원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 노선에 합류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손열 국제학대학원장은 “한국 외교는 먼저 눈치를 보고 어떻게 할지를 정하는 태도를 취해 주변의 비판을 받아왔는데, 더 이상 이런 태도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며 “이젠 국익을 기준으로 사안별로 협력의 대상과 정도를 결정하는 진짜 주체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 신봉길 외교안보연구소장은 희망적인 분석도 했다. 신 소장은 “위안부 문제 타결로 인해 한·미·일뿐 아니라 한·중·일 3각 구도도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미·중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중간에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선 한·미·일, 한·중·일, 한·미·중 협력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굴욕적 대일 외교”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재일조선인평화통일협회(평통협) 이동제 회장 명의로 조선신보에 게재한 담화문에서 위안부 문제가 “결코 남조선에 한한 문제가 아닌 전체 조선민족에 대한 일본 과거 죄악”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11월5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전체 조선민족(한민족)이 당한 피해를 전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종국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의 배상을 촉구했다. 조선신보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로 북한 당국을 직접적으로 대표하지는 않지만 이번 사안이 한·일관계임을 고려할 때 일부러 조선신보를 통해 입장을 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지혜 기자,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