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 9~22일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공개 채용을 실시한 결과 6년 이상 경력 의사를 뽑는 ‘가급’(4급) 공무원 지원자가 모집 인원인 7명을 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응모 조건이 까다로워서는 아니다. 의대 졸업 후 인턴ㆍ레지던트 과정 등을 거치면 경력 6년을 채우는 데 크게 문제가 없다. 예방의학과·내과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고 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함께 채용한 ‘나급’(5급·18명)과 ‘다급’(6급·5명)의 인기도 예상을 밑돌았다. 나급은 2년 이상 경력 의사와 간호학 박사 등이 대상이며 다급은 보건학·수의학·약학 학위 소지자 중에서 뽑는다. 하지만 나급·다급 지원자수를 합해도 50명을 넘지 못했다.
복지부는 지원자가 미달된 가급에 한해 지난 23일 재공고를 내고 추가 모집에 나섰다. 내년 1월 4일까지 지원자를 받을 계획이다. 의대와 관련 학회에도 협조 요청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원을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채용 일정도 더 늦춰질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급 공무원은 2년짜리 계약직인 데다 연봉 하한선도 5255만6000원으로 정해져 있다”며 “지금 기준으로는 우수한 의사를 뽑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정규직 역학조사관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복지부는 논의 끝에 정진엽 장관이 직접 나서 “대부분 공중보건의로 구성된 역학조사관을 정규직으로 대폭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와 논의를 거치면서 2년 계약 후 성과에 따라 3년 더 연장 가능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 조건이 바뀌었다. 실제 연봉도 병원·연구소와 비교해 낮은 수준으로 책정됐다. “가장 우수한 전문가를 뽑겠다던 당초 의지가 퇴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낮은 처우도 문제지만 공공보건을 위해 일하겠다는 지원자들에 대한 비전 제시가 없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으려면 정부가 역학조사관 채용 등 방역정책 개선에 보다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