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1시30분쯤(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남부 바탕가스주에서 교민 조모(57)씨가 4인조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 전문 요원을 파견하기로 했다. 해외에서 발생한 강력사건 조사를 위해 수사인력을 파견하는 건 경찰 창설(1945년) 이래 처음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21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바탕가스주 현지 경찰서장이 한국의 수사 전문 요원 파견에 대해 원론적으로 동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일 4인조 괴한에 또 당해
교민들 “한국 경찰이 나서 달라”
11월 경찰청장 방문 때 공조 합의
수사인력 파견, 경찰 창설 후 처음
김 경위 등은 김일곤 트렁크 살인사건 등 주요 사건마다 과학수사요원으로 투입된 정예 수사관이다. 필리핀 사건 현장에서 감식과 지문확보 작업 등을 맡게 된다.
이번 파견은 지난 10월 마닐라 외곽에서 이모(54)씨 부부가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지고 한 달 뒤쯤 강 청장이 필리핀을 직접 방문해 차후 교민 관련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초동수사 때부터 양국 경찰이 공조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조치다. 당시 경찰은 강 청장의 지시로 현장 감식 ▶CCTV 분석 ▶총기 분석 등 수사전문가 57명이 참여하는 인력풀을 구성했다.
또 이번 파견은 조씨 사망 사건 발생 후 우리 측이 필리핀 경찰 측에 먼저 요청해 성사됐으며 특히 현지 교민들로부터 한국 경찰이 나서 달라는 물밑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직접 수사’가 아니라 ‘공조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강 청장은 “한국 경찰이 외국 영내에서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필리핀 당국의 동의를 받아 과학수사와 감식활동을 지원하고 수사 방향을 자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정 부분 직접 수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필리핀이 엄연한 주권 국가인데, 강력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한국) 경찰이 파견된다고 하는 것은 필리핀 당국의 자존심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경찰은 숨진 조씨가 현지에서 건축업을 해 왔으며 필리핀인 부인, 아기와 잠을 자던 중 혼자만 피살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침입한 괴한이 강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강 청장은 “현지에 있는 경찰 주재관 보고에 따르면 진입 방법, 금품을 가져간 방법 등을 볼 때 강도로 볼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원한에 의한 살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조씨의 사망으로 올해 들어 필리핀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11명으로 늘어났다. 2012년부터 최근 4년 동안 필리핀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총 39명이다.
한편 경찰은 현재 마닐라와 앙헬레스의 필리핀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코리안데스크(한국인 대상 범죄 전담팀)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강 청장은 “현재 코리안데스크에는 2명의 경감급 경찰관이 파견돼 있는데 이를 내년까지 4~5명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