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문집』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출간했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기라성 같은 당대 지식인들의 문집을 집대성한 ‘한국문집총간’ 번역 사업의 일환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번역원 전체 사업의 일부일 뿐이다. 번역원은 1965년 설립 이래 『조선왕조실록』 등 ‘국책사업’ 규모의 대형 번역작업에 매달려 왔다. 올해로 설립 50년을 맞은 번역원의 이명학(60) 원장을 최근 서울 구기터널 근처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황과 과제에 대해 물었다.
-엇비슷한 기관이 많아 번역원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헷갈린다.
“우리는 한문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1차 자료로 제공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고전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과는 차별화 된다.
-고전 번역이 왜 필요한가.
“과거와 단절돼 잃어버렸던 우리의 역사·사상·문화·전통을 되찾자는 취지다. 자기 나라의 역사나 전통을 몰라서는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기 어렵다.”
번역원은 2007년 공식 출범했다. 그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가 우리 것, 민족문화를 되살리자는 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65년 설립됐다. 박종화·이병도·최현배 등 당대의 대가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그간 최고의 성과를 꼽는다면.
“역시 『조선왕조실록』 번역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힘을 합쳐 4800만 자 분량의 실록 전체를 93년 완역했다. 번역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2011년부터 재번역하고 있다. 2억4000만 자 분량의 『승정원일기』, 4800만 자 분량의 『일성록』 등은 지금의 번역 속도로는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 대형 사업들이다.”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한문만 잘한다고 고전을 번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시대의 제도·정치상황·문화에 대해 두루 통달해야 한다. 그런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번역원의 7년 교육 과정을 마쳐야 번역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다. 30대 중반인 번역자에게 중소기업 초봉 정도 밖에 못 준다.”
-결국 예산 문제인가.
“나름 사명감도 있고 고전 번역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번역원은 2018년 서울 은평구에 새 건물을 지어 입주한다. 이 원장은 “1층에 도서관을 지어 주민에 개방하고, 일반인 대상 인문학 강좌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