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603> 할랄식품

중앙일보

입력 2015.12.14 00:13

수정 2015.12.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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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기자

 할랄시장을 둘러싼 전 세계의 구애가 뜨거워지고 있다. 무슬림 인구 급증 등에 따라 2010년 661억 달러(세계할랄포럼 기준)에 불과하던 할랄식품 시장 규모가 이미 2013년 1조 292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19년엔 2조 5370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할랄식품이 뭔지, 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국내에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이달 초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현지에서 알아봤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제도시답게 두바이 중상류층이 많이 거주하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인 두바이 마리나 지역 수퍼마켓엔 비무슬림을 위한 돼지고기 코너가 따로 있었다. 생 돼지고기는 물론 소시지 등 돼지 부산물로 만든 각종 가공식품을 진열해놓고 팔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식품과 섞이지 않도록 엄격하게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돼 있었다. 돼지고기는 ‘할랄’식품이 아닌 ‘하람’식품이기 때문이다.
 

호주 “할랄 시장 공략” 전용 도축장 70곳 … 한국 내년 첫 건립

17억 무슬림에게 ‘신이 허용한’ 식품·의약품·화장품
양·소·닭·낙타 등 “신의 이름으로” 기도문 외운 뒤 도축
할랄 인증기구 전세계 300여 개 국내선 KMF가 450개 품목 인증

돼지고기·알코올 철저히 배제
 

두바이는 외국인이 많아 수퍼마켓에 비무슬림을 위한 돼지고기 정육 코너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안혜리 기자]


 할랄이란 아랍어로 ‘신이 허용한 것’이란 의미로, 이슬람 율법상 17억의 무슬림이 먹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식품·의약품·화장품을 총칭한다. ‘신이 금지한 것’이란 뜻의 하람과 대비되는 말이다.

 할랄식품으로 인증받으려면 이슬람법상의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생산하고 처리해야 한다. 예컨대 육류 가운데선 양·소·닭·낙타 등이 허용된 고기인데, 소고기·닭고기라고 무조건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슬림이 직접 아랍어로 ‘신의 이름으로’라는 기도문을 외운 뒤 단칼에 정맥을 끊어 도살하는 방법으로 도축된 것만 할랄 식품으로 인정받는다. 한 번의 칼질로 신속히 처리하는 게 잔인해 보이기도 하지만 도축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돼지 사육장이나 도축장이 함께 있는 곳에서 기르고 도축한 고기는 아무리 이 방식대로 도축해도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심지어 운송과 저장 단계에서 하람식품과 접촉해서도 안 된다. 만약 할랄을 취급하는 식당이라면 도마와 칼을 사용할 때 할랄과 하람이 섞이지 않게 따로 써야하는 것은 물론 하수구 처리 시설까지 따로 갖춰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육류만이 아니다. 채소·과일·곡류 등 비육류성 식품에도 할랄이 적용된다. 돼지 배설물을 비료로 쓴다든가, 술을 마시고 제조 과정에 참여하는 식으로 초기 생산단계에서조차 하람과의 접촉은 금물이다.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가령 라면의 닭고기 분말스프에 쓰인 닭고기는 당연히 이슬람법에 따라 도축된 것만 써야 한다.

 한가지 더. 모든 제조공정에서 돼지고기뿐 아니라 알코올 성분도 들어가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김치나 장 등 자연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알코올이라도 인증기관별로 에탄올이 0.5~1%를 넘으면 할랄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할랄시장 공략을 위해 장류의 알코올성분 저감 기술개발 등의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웰빙바람 타고 비무슬림으로 확대
 

국내 식품업체는 할랄 인증을 받은 라면·김치 등 가공식품을 두바이 등 무슬림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두바이 까르푸 매대에 진열된 한국산 김치. [안혜리 기자]


 1990년엔 세계 인구 중 무슬림은 11억 명(전 세계 인구 중 비중 19.9%)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인 17억 명이 무슬림일 정도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할랄식품시장 규모도 쑥쑥 크고 있다. 2009년에도 이미 세계 식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9%로 만만치 않았지만 매년 급성장해 2019년엔 2조 5370억 달러로 21.2%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할랄식품이 비무슬림으로까지 점차 확대하는 것도 할랄시장이 커지는 또 다른 요인이다. 할랄에는 육류 도축 전 무슬림이 기도문을 외는 등 종교적 절차가 물론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해썹) 등 식품 품질과 관련한 기본적 국제 표준을 준수하기 때문에 비무슬림 사이에서 할랄인증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이라는 일종의 품질인증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 사이에서는 식품을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 비무슬림 사이에서는 마치 우리의 유기농 마크처럼 프리미엄 상품으로 대접받는다는 얘기다.

 단일국가로는 인도네시아가 1970억 달러(2013년 기준)로 가장 큰 시장이지만, 미국이 128억 달러, 프랑스 119억 달러, 독일 99억 달러로 선진국 시장 내의 할랄 식품시장 규모도 만만치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과 서유럽에 사는 무슬림 인구에다 웰빙 트렌드로 비무슬림도 할랄식품을 점차 많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할랄 초콜릿과 쿠키 제조업체인 네덜란드 마르하바는 매출의 25%가 비무슬림 소비자로부터 나올 정도다.

 이렇게 광활한 시장을 발 빠르게 공략한 건 네슬레 등 비무슬림 다국적 기업이다. 네슬레는 1980년대부터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할랄시장에 진출해 세계 최대 할랄식품 공급업체로 부상했다. 두바이의 까르푸 등 대형매장에도 커피뿐 아니라 육류 캔 가공품 등 네슬레 상표를 단 물건이 많이 보였다. 네슬레뿐 아니라 미국의 사프론 로드 등 대형 다국적 기업이 할랄식품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말레이시아가 최대 수출국(2013년 98억 달러)이다.

 그런가 하면 이들에 비해 후발주자인 호주는 수출 가능한 육류를 도축하는 131개 도축장 중 할랄 전용 도축장을 70개소나 만들 정도로 할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는 할랄 전용 도축장이 단 1개도 없다.

 
국제 인증표준 없어 … 기관별로 요건 달라
 

 세계적으로 300여 개의 할랄 인증기구가 있다. 그렇다 보니 인증요건도 이슬람법 해석에 따라 인증기관별로 상이하다. 다시 말하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할랄 인증 표준이 없다는 얘기이고, 할랄식품 관련 시장이 아무리 크다 해도 각국별로 각각 다른 기관의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이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인증기관의 신뢰도 문제도 있다. 식품업체로서는 할랄 인증을 받기도 어렵지만, 소비자들이 이 인증마크를 신뢰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300여 개의 인증기구에서 발급한 각기 다른 모양의 인증 마크 가운데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인증기관이 난립돼 있지 않고 총리실 산하에 쟈킴(JAKIM)이라는 할랄 인증기관을 두고 있어서다.

 인증기관별로 다르긴 하지만 매년 갱신해야 하는 할랄 인증 1건에 평균 2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 할랄시장 못지 않게 할랄 인증시장 역시 큰 셈이다. UAE가 최근 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UAE는 에즈마(ESMA·연방표준측량청) 주도로 2014년 자체 할랄식품 인증기준을 정립하고 걸프 6개국(GCC)의 할랄 인증기준 통일을 주도하고 있다. 욕심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 57개 무슬림 회원국 기구(OIC)의 할랄식품 인증 표준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할랄 인증기구가 있다. 1964년 설립한 국내 유일의 이슬람 선교기구인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Korea Muslim Federation)가 국내 유일의 할랄 인증기관이다. KMF는 1980년대부터 할랄 인증을 시작했고, 2010년부터 체계적인 할랄 인증을 위해 부속기구로 할랄위원회를 구성했다. 5월말 현재 134개 업체의 450개 품목이 KMF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각국이 할랄인증을 자국 정부 주도로 강화하는 추세라 국내 식품업체가 KMF의 할랄인증만으로 할랄시장을 뚫기란 쉽지 않다. 자국이 인정하는 인증기관만 제품에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거나 아예 수입을 제한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KMF가 국제적으로 공신력있는 인증기관으로부터 교차 인정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2013년 7월 말레이시아 쟈킴이 인정하는 할랄인증기관으로 등록했고, 올 9월 갱신에 성공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종교지도자단체가 주도하는 인증기관 MUI(무이)와도 등록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각국 인증을 따로 받을 필요없이 국내에서 KMF 인증만으로 대신할 수 있어 할랄시장 공략이 비교적 수월해진다. 올 4월말 현재 외국 인증기관의 인증은 받은 건 14개 업체 264개 품목이 전부였고, 지난달 UAE 에즈마로부터 5개 식품업체가 추가로 인증받았다.

 
한국, 2017년 농식품 수출 목표 15억달러

 할랄시장으로의 농식품 수출액은 지난해 8억 6000만 달러. 농림축산식품부는 2017년엔 15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농식품 수출 목표가 100억 달러이니 15% 수준이다. 이를 위해 할랄인증 비용을 지원하고 있고, 2016년 중에는 할랄 전용 도축장도 세울 계획이다. 또 해외 무슬림 도축인의 국내 취업이 가능하도록 비자 발급을 허용하는 걸 법무부와 협의중이다.

 할랄인증은 식품 수출은 넘어 국내 관광산업 확대와도 맞물려 있다. 한국을 찾는 무슬림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부분이 먹거리인데, 국내에서 보다 쉽게 할랄식품을 접할 수 있게 되면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할랄 인증 식당 수는 이태원과 남이섬의 6곳이 전부지만 조리시설 리모델링 비용을 매년 5개소씩 지원해 2017년 30개까지 늘릴 방침이다.

 또 올해말부터 할랄식품 인증표시 허용을 위해 관련 법령도 재정비했다. 지금까지는 민간기구의 인증 표시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왔기 때문에 국내 식품회사들이 할랄인증 표시가 붙은 제품을 수출했다가 국내로 역수입했으나, 이런 규제도 풀기로 했다.

두바이=안혜리 기자 ahn.ha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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