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활기, 재미와 감동이 어우러진 시상식이었다. 최고의 문학상인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선배 문인들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 없을 ‘예술론’ 수준의 수상 소감을 토해냈고, 시상식이 서툴 수밖에 없는 후배 문인들은 생기 넘치는 각오를 쏟아냈다. 시상식을 많이 다녀보지 않아 수상 소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며 막 등단한 막내 시인이 끝내 눈물을 흘리자 선배들은 “원래 작품 쓰는 것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며 후배를 다독였다.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서울시 신청사에서 열린 제15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제16회 중앙신인문학상의 시상식 풍경이다.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은 공교롭게도 1915년 같은 해에 태어나 2000년 같은 해 나란히 타계한 미당 서정주 시인과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앙일보가 2001년 제정한 국내 대표적인 문학상이다. 올해는 특히 두 문인이 탄생한 지 나란히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더욱 뜻깊을 수밖에 없다.
한강 “도망치지 말라 팔 잡는 느낌”
중앙신인문학상 3명 시상식도
동료문인·가족 등 150명 한자리
소설가 한강(45)씨의 황순원문학상 당선작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은 잡지사 노동쟁의를 소재 삼아 우리가 과연 남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지를 물은 작품이다. 그는 “수상 통보를 받는 순간 뭔가 더 이상 도망치지 말라고 팔을 꽉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오늘 시상식에 참석한 다른 작가들의 수상 소감을 지켜보며 모두가 뜨겁게 애쓰고 있다는걸 느꼈다”고 말했다.
최정례 시인 축사에 나선 김승희 시인은 “최 시인은 울퉁불퉁한 근육의 시 쓰기를 하는 시인이다. 얌전한 시를 쓸 수 없어서 그런 시를 쓰는 게 아니다”라며 거침 없는 시 세계에 대해 덕담을 했고, 신인문학상 심사위원 축사를 한 정홍수 평론가는 “갈수록 파편화되는 디지털 시대에 젊은 세대가 문학의 비밀과 내밀한 고독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지만 미래의 작가들이 자기들의 몫을 다하리란 확신이 오늘 들었다”고 말했다.
미당문학상 예심 심사를 한 문학평론가 송종원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시상식은 동료 문인들과 수상자들의 친지·친구들을 합쳐 150명 가량이 참석했다.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은 김소현씨가 ‘투명 인간-못 생긴 너에게’로 받았고, 소설 부문은 이재은씨가 ‘비 인터뷰’로 수상했다. 평론은 이수명의 시 세계를 분석한 방인석씨가 받아 등단했다. 미당·황순원문학상 심사위원 축사는 소설가 임철우씨가, 한강씨의 동료 문인 축사는 서울예대 제자인 소설가 윤해서씨가 했다. 시상은 중앙일보 이하경 논설주간이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한강씨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씨를 비롯해 시인 천양희·이시영·김기택·이진명·장석남·조용미·홍일표·이원·배용제, 소설가 정미경·구효서·은희경·하성란·윤성희, 평론가 한기욱·이광호·서영채·조재룡·함돈균·백지연·심진경·황종연·서희원, 번역가 안선재, 중앙북스 노재현 대표 등이 참석했다.
글=신준봉·정아람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