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언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일본·한국에서 민주적인 사회가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학문의 자유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사회 운동이다. 운동가들은 특정 소수 그룹에 비판하는 견해를 표명하는 학자나 학생을 응징하려고 한다. 미국 대학 캠퍼스에는 당연히 혐오 스피치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가 설 땅이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동시에 다양한 시각의 공존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절충주의적인 사고를 교환하는 것은 인문교육의 핵심이다. 이념의 강요나 암기식 교육은 절대로 고등교육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최근 예일대와 미주리대에서 발생한 항의 시위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까지 참여했다. 시위는 다른 대학으로 확산됐다. 이들은 인종이나 종교, 남녀 성별상의 차이를 등을 이유로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교수나 학생들에게 의무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제는 일부 민감한 주제를 수업에서 다룰 수 없게 하려는 학생들과 일부 행정가의 요구다.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처음에는 공감을 얻었지만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좌우 양쪽이 학문 자유 위협
한·미·일 학자들 대화가 절실
한국에서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서울동부지검이 지난달 18일 기소했다. 그의 책 『제국의 위안부』가 허위 사실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박 교수가 “학문 자유의 경계를 일탈했다”고 말했다. 세계의 학자들은 박 교수가 제시한 사실의 정확성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연구되고 수정되고 재해석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는 역사적인 진실을 소유할 수 없다. 얄궂게도 박 교수 책의 일본어판을 발행한 곳은 좌파 성향인 아사히신문이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한 우에무라의 전 고용주인 바로 그 아사히신문인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사례는 각기 다르다. 미국 대학 캠퍼스의 항의 시위는 그 자체가 언론 자유의 표현이다. 시위의 요구나 그 결과가 학문의 자유에 필요한 공간을 좁혔지만 말이다. 일본에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우익 활동가가 폭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말도 안 된다. 일본의 학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위협을 공개적으로 단죄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의 검사들은 위안부 여성들을 위해 박 교수를 기소했다. 위안부 여성 편에 서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하지만 검사들의 방식은 학문의 자유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한·미·일 3국 사례의 공통점은 결과적으로 학자들의 연구나 민감한 주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토론에 덜 관용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슬프고도 얄궂은 일이다.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가장 민감한 사안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미국의 인종 문제이건 한·일 간 역사적 갈등이건 말이다. 이런 때일수록 학자들은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한·미·일 3국을 지켜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학문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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