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선거 승리만 묻고 50년 이상 군부 치하에서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역사였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에서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만난 우 냔윈 당중앙위원회(CEC) 위원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아니라 ‘역사’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11월 8일)승리가 53년간 쌓여온 군부 독재의 모순 때문이라는 말이다. 반면 같은 날 만난 집권여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우 띤윈 위원은 “미얀마 국부(國父)인 아웅산 장군의 아우라에 졌다”며 “부족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의 과도한 평가로 몰표가 나왔다”고 선거 패배 이유를 분석했다. 과연 변화의 출발점인 25년만의 자유총선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군부 부정부패와 민주화 열망
미얀마는 1948년 1월 영국에서 독립했다. 독립 1년을 앞두고 지도자였던 아웅산 장군을 잃었다. 1962년 네 윈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군부 독재는 53년간 이어졌다. 군부는 64년 산업시설 국유화라는 어설픈 사회주의 실험으로 미얀마 경제를 나락에 빠뜨렸다. 민간기업과 땅이 모두 국가소유로 넘어갔고 언론도 사라졌다. 서양곤기술대 김흥국 교수는 “독립 직후 미얀마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비옥한 토지로 동남아에서 제2의 경제대국이었지만 군부 정권이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며 부정부패와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아우라와 ‘아메 수’
미얀마 시민들의 투표 열기는 대단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투표율은 80%였고, 이중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79.4%를 얻었다. USDP는 300석 가량의 의석을 잃었다. 25%의 군부 지명 의석(116석)에도 한참 못미치는 42석에 그쳤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수지 여사가 있었다. 양곤에 거주하는 카잉카잉(24ㆍ여)은 “선거 직후 양곤 전역에 ‘아메 수’가 울려 퍼졌다”고 말했다. 아메 수는 미얀마어로 ‘우리 어머니 수지’라는 뜻이다. 빈민가 흘라잉타르에서 만난 아웅 저 뗏(36)씨도 “정책은 잘 모르지만 ‘아메 수’를 믿고 투표했다”고 말했다. USDP쪽에서 ‘묻지마 투표’였다는 불만이 나온 이유다.
◇보라색 손가락 혁명
양곤에서 인상 깊었던 건 신문과 스마트폰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신문을, 젊은 층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미ㆍ중 이해 충돌로 인한 힘의 공백
아무리 국민의 열망이 높아도 총칼을 넘기는 힘들다. 1990년 군부의 선거결과 무효화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군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바로 외부로부터의 더 강한 힘이다. 2010년 이후 군부가 개혁개방의 길로 나선 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영향이 컸다. 전 양곤경제대 부총장 레이찌 미얀마통계협회장은 “경제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군부로선 가난한 내수시장으로는 부를 충당하기 힘들었다”며 “국제사회 제재를 풀기 위해 군부도 미국 등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미얀마는 동남아 지역의 지정학적 요충지다. 위로는 중국과 긴 국경을 접하고 있고 아래로는 인도양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이 파키스탄~미얀마~방글라데시 등 인도양 주변 국가에 항만을 건설해 중동에서 남중국해까지 이어지는 거점을 연결하는 ‘진주목걸이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놓쳐서 안되는 곳이 미얀마다. 때문에 중국은 군부정권을 지지하며 오랜 시간 미얀마에 공을 들여왔다. 미국 입장에서도 미얀마는 놓쳐서는 안 된다. 아시아재균형 정책에서 중국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라서다. 인도는 낙후된 북부 개발을 위해, 일본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포스트이자, 새로운 동남아 생산기지로 미얀마를 필요로 한다.
강신원 순천대 교수(한ㆍ미얀마 연구회장)는 “이번 선거가 무사히 치러진 이면에는 강대국들의 상호견제가 있었다”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테인 세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고, 시진핑 중국 주석이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난 건 강대국들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강대국들의 강력한 이권이 걸린 상황에서 미국 주도로 미얀마의 ‘민주화’가 지지를 받았고, 미얀마를 끌어들이기 위한 중국ㆍ일본 ‘투자’가 이뤄지며 미얀마가 정치ㆍ경제 부문에서 자율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셈이다.
선거는 끝났다. 수지 여사도 “비교적 공정한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이제 남은 건 숙제다. 열강의 전략적 충돌 속에서 법치 확립 등 실질적 민주화 확립과 경제개발 등 과제가 남았다. 우 냔민 NLD 위원은 “자유가 충만하고 독립적인 국가를 만드는 것이 NLD의 꿈”이라고 했다. 미얀마에 봄이 오고 꿈이 이뤄질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양곤=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