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월호에 이어 올해 메르스로 빙하기에 갇혔던 소비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 건 다행이다. 그나마 소비가 살아난 덕에 수출이 죽을 쒔어도 경기가 버텼다. 그러자 정부나 한은은 내년에도 소비 덕에 경기회복세가 이어질 거란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는 내수 중심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성장 모멘텀을 올해 4분기에 이어 내년까지 이어간다면 내년에는 3%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경제부총리가 낙관론을 펴는 걸 탓할 순 없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단이 빗나가면 처방도 사람 잡기 십상이다.
관제 세일, 개별소비세 인하로 반짝
일자리 뒷받침 안 되면 내년 소비 절벽
소비를 뒷받침해준 부동산 경기도 위태롭다. 올해 건축 인허가를 받은 주택은 70만 가구가 넘을 전망이다. 분당·일산 신도시를 지은 1990년 이후 최대다. 그만큼 아파트 건설현장도 늘었다. 현장엔 돈이 돈다. 그러나 위례와 동탄을 끝으로 당분간 신도시 개발은 없다. 건설회사는 더 짓고 싶어도 땅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내년 건설 경기가 올해만 못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여기다 고삐 풀린 전셋값에 월세 확산으로 주거비 부담은 껑충 뛰었다. 다음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리면 대출금 이자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비록 관제 소비 붐이라도 마중물이 돼 투자를 자극한다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제조업은 이미 코가 석 자다. 중국이 수출에서 내수 주도로 성장 전략을 바꾸는 통에 신규 투자는커녕 과잉 설비 줄이기도 벅차다. 삼성·현대차·SK 같은 대기업조차 가망 없는 사업을 정리하기에 급급하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는 내년엔 ‘좀비 기업’ 퇴출도 봇물을 이룰 수밖에 없다. 소비 회복이 투자를 자극하고 일자리가 늘어나 다시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교과서적인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마당에 외상으로 쓴 소비 청구서마저 날아들면 내년엔 ‘소비 절벽’과 맞닥뜨릴지 모른다.
풍전등화 같은 소비 불씨를 살릴 유일한 묘약은 일자리다. 제조업은 다이어트 중이니 일자리가 나올 구멍은 서비스업밖에 없다. 사람 장사인 관광산업은 일자리 보고(寶庫)다. 마침 내수 부양정책 덕에 지갑이 두툼해진 유커(遊客)도 몰려오고 있다. 한데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 기껏 마련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관광진흥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 같은 경제활성화법안은 국회 벽에 갇혀 있다. 내년부턴 정년도 60세로 연장된다. 노동개혁법안이 무산되면 ‘고용절벽’은 깊어진다. 시간도 촉박하다. 올해를 넘기면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란 블랙홀이 기다린다. 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오기보다 어려워진다. 반짝 소비 회복에 취해 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경민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