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이철호의 시시각각] 안철수가 친노를 못 믿는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2015.11.24 00:15

수정 2015.11.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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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얼마 전 새누리당 경제통 의원(이하 경칭 생략)을 만났다. 그는 “야당과 경제정책을 이야기하려 해도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그나마 경제 용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홍종학뿐”이라 털어놓았다. 홍 의원은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어제 비슷한 내용의 한겨레신문 칼럼이 눈에 띈다. “(야당의) 주류와 비주류 핵심은 운동권과 변호사 출신이다. 새정치연합 의원 127명 가운데 운동권 출신이 63명, 변호사가 23명이란다… (이러니) 국민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의원들의 색조가 단조롭기 그지없다. 당내에선 ‘김진표·이용섭 의원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한탄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문재인이 문-안-박 연대를 내밀었지만 안철수가 이를 받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줄곧 ‘낡은 진보 청산’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배타성, 과도한 이념, 정책 실종(무능), 무(無)비전이 낡은 진보”라 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친노와 운동권 출신을 지목한 셈이다. 반면 친노 진영은 ‘어게인 2012’가 꿈이다. 2017년 대선까지 문재인 후보를 사수하고 새누리당의 약체 후보가 나오면 승산이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의 과반을 거머쥐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사석에서 안철수 의원을 만났다. 친노와의 사이에 깊은 균열이 느껴졌다.

 -정치권에 들어와 언제 가장 힘들었나.


 “대선 때다. 대선 후보를 양보한 직후 그쪽 캠프에서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다’며 선거판에 얼씬 말라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대선에 임박해 지지율이 떨어지자 합동유세를 압박했다. 내가 사무실에 나가 아파트가 비었음을 알고도 문재인 후보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는 ‘삼고초려’한 셈이고, 나는 ‘문전박대’한 괘씸한 사람이 됐다.”

 -가장 좋았던 때는.

 “야당에 합리적 의원들이 적지 않은 걸 깨달은 지난해 5월 기초연금법 때다. 의총에서 발언한 30여 명의 강경파는 반대 일색이었다. 하지만 의원 전수조사 결과 찬성이 63명으로 반대 44명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침묵 속의 합리적 다수가 우리 당의 희망이다.”

 하지만 안철수의 실험이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그가 내세운 ‘혁신’의 알맹이는 ‘친노의 패권 포기’나 다름없다. 그 ‘물갈이’ 공간에 합리적 중도의 전문가들과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진영논리와 싸움 기술의 달인들이다. 이미 안철수의 실험은 씨도 안 먹히는 분위기다. 오히려 야당은 청년 기준을 청년고용법의 29세를 뛰어넘어, 기존 당헌당규상 43세도 45세로 슬쩍 높였다. 청년비례대표를 의식한 것이다.

 그나마 새누리당에선 김태호·이한구·김회선 등 5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야당은 평균 연령이 세 살이나 더 많은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586의원들도 “이제 겨우 재선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뚝심 있게 버틴다. 미국의 오바마는 이미 47세에 대통령이 됐다. 유럽에선 영국의 캐머런(49),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40) 총리 등 주요국 정상 10명이 40대다. 미국의 45세 라이언은 하원의장에 올랐다. 반면 한국에선 야당이 고령화 사회에 앞장서고 있다. 야당의 “20~40대가 우리 고정 지지층”이란 자랑이 언제까지 통할지 궁금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내홍은 깊어 갈 듯싶다. 호남 민심이 반문(反문재인)으로 돌아서고, 여기저기 신당 바람도 심상찮다. 이번에는 안철수도 쉽게 친노의 들러리를 서줄 것 같지 않다. 야당에 경제 브레인이 없으니 내년 총선 공약은 “닥치고 복지-재원은 부자 감세 100조원 철회”의 도돌이표가 될지 모른다. 이미 서울시와 성남시의 50만원 청년수당부터 불길한 징조다.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과거로 회귀했다”고 비난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야당 역시 ‘응답하라, 1987’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런 지겨운 복고 드라마는 TV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