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걸린 거제 생가 … “와 그리 빨리 갔노”

중앙일보

입력 2015.11.23 02:27

수정 2015.11.2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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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1969년부터 거주했던 서울 상도동 자택 인근 주민들은 22일 조기를 내걸었다. 전국 지자체는 23일부터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송봉근·강정현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2일 오전 빌라와 연립주택들이 들어선 서울 동작구 상도동 골목엔 집집마다 조기가 게양돼 있었다. 이웃 주민들이 추모의 뜻으로 내건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자택 앞은 아침 일찍부터 애도를 표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자택 맞은편 빌라에 살고 있는 박상규(65)씨는 조기를 내걸며 “이틀 전 새벽부터 까마귀 10여 마리가 전신주 위에서 울어대길래 기분이 이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 김창배(55)씨는 “과(過)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큰 획을 그은 공도 많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도동 자택 골목 집집마다 조기
단골 칼국수집 “식성 좋은 분” 추억
SNS에선 “민주화 거목 쓰러졌다”

 상도동 자택은 1969년 이사 온 뒤 김 전 대통령이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무대가 됐다. 69년 당시 괴한들에게 ‘초산 테러’ 습격을 받은 곳도, 80년 가택연금을 당한 곳도, 8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곳도 이곳이었다. 이날 어린 딸과 함께 김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윤모(37·여)씨는 “한국 역사에 뜻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린 딸과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외포리 생가 인근 대통령기록전시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송봉근·강정현 기자]


 ‘민주주의(民主主義)’ ‘대도무문(大道無門)’. 이날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 김 전 대통령 생가의 본채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를 따라다녔던 상징적인 수식어들이다.

 1893년 지어진 생가는 김 전 대통령이 13세 때까지 성장한 곳이다. 내부에는 그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당시 모습 등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그의 흉상과 그가 직접 글씨를 쓴 현판·액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이 마을에서 50여 년간 살아온 정영자(76·여)씨는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온 동네 사람이 이곳(생가)에 모여 꽹과리 치고 춤을 추며 기뻐 안 했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돌아가셨다니 착잡하제”라고 말했다. 인근 대금마을에 사는 권재선(80·여)씨도 “거제의 자랑이었제. 아까운 사람이 와 그리 빨리 갔노”라며 아쉬워했다.


 김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을 가진 인사들도 고인을 추억하며 슬픔에 잠겼다. 칼국수 매니어였던 그의 단골집인 서울 성북동 ‘국시집’ 이수자(64) 사장은 “대통령으로 계실 때 매주 일요일 예배 후 가족과 함께 찾았고, 2013년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도 두 달에 한 번씩 오셨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식성이 좋아 뭐든지 잘 드셨다. 수육을 내면 한 접시를 어찌나 빨리 먹는지 따로 한 접시를 내놔야 할 정도였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이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민주화의 거목이 쓰러졌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당신을 기억하겠다” “하나회 척결부터 금융실명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까지 수고하셨다” 등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의 글들이 이어졌다. “외환위기를 초래해 국민들에게 짐을 안긴 건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유성운·김선미·박병현 기자
거제=위성욱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