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양선희의 시시각각] 옷 입히는 ‘플레이보이’지

중앙일보

입력 2015.11.18 00:10

수정 2015.11.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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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미국 성인지 ‘플레이보이’가 내년 3월부터 여성의 누드 사진을 게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실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 잡지를 본 적은 있다. 한데 잡지에서 여성 누드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아름답다’보다는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모델들이 짓고 있던 묘한 입모양과 표정, 몸을 비틀어 곡선을 만드는 기묘한 포즈 같은 것 때문이었다. 이런 표정과 포즈는 여성의 상상 범위 안엔 없는 것들이었다.

 언젠가 트랜스젠더 여성 연예인을 보며 그런 동작은 남성들의 상상 속 산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연예인은 입술을 내밀고 눈을 묘하게 흘기는가 하면, 요란하게 엉덩이를 흔들고 몸을 외로 꼬는 등 희한한 동작들을 반복했는데 원래 여성보다 훨씬 더 유혹적이라는 평을 듣곤 했다. 한때 남자였던 그는 남성들이 공유하는 매혹적인 여성의 표정과 자태를 잘 알기에 남성 관점에서 본 섹시한 여성을 구현하는 걸로 보였다. 그를 통해 여성을 대상으로 기괴한 것을 상상하는 남성의 정신세계를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플레이보이지 역시 여성들에겐 그런 의미가 있다. 당대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와 지구 전역을 뒤져 찾은 아름다운 육체를 타고 난 여성들을 벗긴 사진, 맬컴 X, 지미 카터, 피델 카스트로, 스티브 잡스,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남성들의 인터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무라카미 하루키 등 당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실리는 잡지. 여성들도 이 잡지를 통해 여성을 벗겨보고 싶어하는 음욕뿐 아니라 강력한 남성 권력자에 대한 동경 혹은 질투에다 문학과 철학을 추구하는 지적 허영까지 버무려진 마초들의 다층적 욕망을 한 꺼풀 벗겨볼 수 있었다.

 이 잡지가 태어나고 번성했던 시기는 금력과 권력이 남성에게 쏠려 있던 때와 맞물린다. 이 잡지를 기점으로 포르노 산업이 번창했고, 성담론이 자유화되면서 남성의 욕망 자체가 거대 산업으로 발전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이 와중에 영리하고 끼 있는 여성들은 남성의 욕망을 공략해 그들의 지갑을 열어 자신의 지갑을 채우고 명성을 쌓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도 했다.


 “클릭만 하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성행위를 공짜로 볼 수 있는 시대에 누드 사진은 과거의 유물이 됐다.” 플레이보이지는 누드 포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결정에 ‘미쳤다’거나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식의 비판이 잇따랐다. 그런가 하면 가디언지는 “여성의 나체를 죄악시한 중세 종교적 암흑기의 시대정신에 맞닿은 것으로 인류사적 자유정신에 대한 패배”라는 문화사적 비평도 실었다. 성 상품화를 극렬히 반대하는 극성 페미니즘에 대한 굴복이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읽혔다.

 어쨌든 그들이 누드를 싣든 말든 관심이 없었는데, 갑자기 신경이 확 쓰이는 뉴스가 나왔다. 지난주 플레이보이가 온라인쇼핑몰 영업을 공식 개시했다는 소식이다. 토끼 모양을 넣은 옷부터 병따개까지 2000여 가지 상품을 파는데 조만간 1만 개로 늘리고, 180개국에 라이선스 사업도 하겠단다. 이젠 여성의 욕망을 공략하겠다는 속셈인 게다. 여성의 금력과 권력이 높아지는 시점이니 이젠 여성의 욕망도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걸 꿰뚫어본 모양이다. 89세에도 20대 아내와 살 만큼 욕망 발현과 상업화에 충실한 영리한 노인 휴 헤프너가 말이다.

 모델들에게 옷을 입히는 건 페미니즘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여성의 욕망을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상술이라는 거다. 여성의 욕망은 남성과 달리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다는 점에서 “이 아름다운 란제리를 입고 싶지 않아?”라고 꼬여내려고 작정한 게다. 남성의 노골적 욕망이 시장판으로 나온 이후 세상은 미성년자까지 포르노로 내몰리는 소돔과 고모라가 됐다. 여성의 노골적 욕망은 어떤 시장을 만들어낼까. 인간의 은밀한 욕망은 좀 덮어둘 때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믿는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걸까.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