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감정노동자의 '적응 장애'와 '우울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관련 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그동안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만 인정했지요. 이 때문에 고객을 상대하다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기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걸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가 생긴다니 늦게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감정도 노동재화입니다. 모 도시락업체가 무례한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각계에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지요. 직원의 사기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덤으로 기업의 이미지까지 업그레이드하고 있지요. 감정을 소중히 하면 생산성도 올리고, 기업의 브랜드 가치까지 높일 수 있는 셈입니다.
사실 고객이 원하는 건 과도한 친절이 아닙니다. 원스톱 서비스, 신속한 처리, 정확한 상품정보 제공과 같은 것입니다. 소비자의 불만은 여기서 터져나옵니다. 이걸 감정노동자에게 모두 떠안기는 건 기업의 부도덕한 행태라 할만합니다. 소비자의 불만을 제때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인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소신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사관리시스템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으로부터 입은 상처에 더해 2차, 3차 피해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진상 고객에 대한 책임도 명확하게 물어야 합니다. 올 3월 광주 서부경찰서가 대형마트 근로자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고 행패를 부린 30대 남자를 구속했지요.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에선 당연한 일입니다. 갑질을 하는 사람에게 강도높은 책임을 묻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가 드물지요. 기업도 쉬쉬하고, 직원도 고소하길 꺼려서입니다. 기껏해야 시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망신을 주는 게 고작입니다. 인민재판식 응징, 이건 아니지 않나요. 법이 있는데 말입니다. 엄한 법집행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존중하는 사회가 밝은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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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의 우울증까지 산재로 기업이 책임지는 것은 과잉입법입니다."
일부 경제단체는 이렇게 반론을 폅니다. 정신질환 가운데 우울증이 가장 많습니다. 환자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2010년 45만명이던 환자가 지난해엔 52만5000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이 중 70%가 여성입니다. 국민건강보험이 우울증 진료비로 부담한 게 1906억원입니다. 경제단체의 반론은 "이게 일을 하다 생긴 것인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일부는 고객 갑질까지 기업이 떠안는 건 과하다는 얘기도 합니다.
본지는 이런 주장에 일리가 영 없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감정노동자의 정신질환에 대해 단순 비용 논리로 접근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고객의 갑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가 기업에 있습니다. 이걸 부정하면 그 기업에서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오히려 정신질환이 생기기 전에 관리하는 게 맞습니다. 일본에는 사내에 정신과 컨설턴트를 둔 회사가 많습니다. 감정만 잘 관리해도 근로자의 기분은 좋아집니다. 기분이 좋으면 일이 손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생산성이 올라가는 건 당연합니다. 이런 점을 도외시하고 산업재해라며 비용으로 해석하는 건 뭔가 비정하지 않습니까. 일본 기업은 이걸 잘 알고, 한국 기업은 이걸 몰라서 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무관심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그럴 시기는 지났습니다. 근로자의 감정까지 관리할 줄 아는 회사가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크는 시대입니다. 따지고 보면 성과급도 근로자의 기분을 좋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근로자의 감정은 회사의 경영사정이 나쁘면 같이 나빠집니다. 회사가 승승장구하면 덩달아 좋아하고, 밖에서 자랑도 하고 싶어집니다. 회사에 애착을 더 느끼게 되고,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회사가 이런 근로자의 감정을 비용으로 접근해서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산업재해라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빌리기 전에 기업 안에서 먼저 보듬어주는 게 맞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같으리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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