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파트너인 김용덕(42) 소방위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한 걸 보고 “큰 사건이 터졌구나”라고 직감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비규환이었다. 무너진 체육관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다음날까지 구조물의 작은 구멍을 드나들며 쉴 새 없이 실종자를 찾았다. 하지만 생존자는 끝내 못찾고 차가운 시신 1구만 수습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산소방본부 소속 9살 셰퍼드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 때도 활약
구조견 시험 낙방, 노력으로 극복
전국 구조견 대회에서 상 휩쓸어
내 이름은 ‘세중’이다.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단 소속이다. 셰퍼드 종으로 9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60대다. 2011년 10월 28일 현 근무지로 와 핸들러(개를 훈련시키는 사람)인 김 소방위와 팀을 이룬 지 10일로 꼭 1475일째다. 총 277차례 출동해 20명의 생명을 구했고 8명의 사체를 수습했다.
사람보다 1만 배 이상 발달한 후각과 40배 이상 발달한 청각이 있어 가능했다. 후각과 청각은 내가 가진 유일한 수색장비이기도 하다. 나는 빠른 스피드가 주특기다. 산악 수색은 전국 22마리 구조견 중 으뜸이다. 전국 인명구조견 운영기관 평가에서 2011~2015년 5년 연속 수상했고 전국 인명구조견 대회에서 각종 상도 휩쓸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등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구조견 시험에서 세 번이나 탈락한 낙제생이었다. 같은 날 태어난 삼형제가 모두 두 살 때 구조견이 됐지만 나는 연거푸 낙방했다. 그러다 2011년 5월 국민안전처 인명구조견 센터에서 첫 졸업생으로 구조견이 됐다.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그 때 그 세중이가 맞냐”며 놀라워했다. 본성을 억누르고 핸들러의 지시에 따라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구조견의 삶은 배고픔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는 하루 500g의 사료만 먹었다. 사람으로 치면 밥 한 공기 정도다. 날렵한 몸놀림을 위해 30~31㎏의 몸무게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다. 식사 후 곧바로 달리면 위가 뒤틀려 죽을 수 있어 언제 출동을 나갈지 모르는 나는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출동을 나가면 기본이 2~3일, 길게는 1주일간 수색에 참여한다. 고생 끝에 실종자를 찾았는데 숨져 있으면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한 건 생존자를 발견했을 때의 보람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특수구조단에 함께 왔던 천둥(7·골든 레트리버)이에게 수색 에이스 자리를 맡기고 이달 말 은퇴한다. 아직 마음은 현장을 누비고 싶지만 나이를 고려해 새 주인에게 보내지게 됐다. 5년간 팀을 이뤘던 김 소방위는 말했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은퇴 선물은 너의 명성을 후배들이 다시 이어가도록 하는 거야. 핸들러는 구조견들의 명성과 자존심을 지켜주는 사람이니까. 국내 최고인 너를 만나 정말 행복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