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고령화와 양극화의 함정에 갇히고 있는 상황에서 출구는 무엇일까. ‘노인 맞춤형 일자리’ 창출은 행복한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핵심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성공적으로 노인 고용 실험을 진행 중인 일본 중견기업을 찾아 그 가능성을 모색해봤다.
코앞에 온 '실버코리아' 노인과 함께 일하는 일터
일본 가토제작소, 노인 고용 성공기
“능력 있는 사람은 나이 들어도 유능”
가토제작소 “꼭 필요한 시간에 활용”
올해로 9년차 직원인 후지(74)는 특별 스카우트된 경우다. 그는 원래 비행기 부품 관련 공장에서 일하다 은퇴했는데, 가토제작소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대표에게 그를 추천했다. 후지는 30~40대 정규직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는 이날 비행기 부품 제조기술을 배우는 정규직 직원과 부품 도면을 앞에 놓고 토론 중이었다. “나이가 많지만 젊은 직원들에게 뭐든 가르쳐줄 수 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열심히 분발해 어디 한번 기술로 나를 이겨봐!’라고 말하곤 합니다.”(후지)
1888년 세워진 가토제작소는 비행기·자동차·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금속부품을 만드는 곳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건 2001년이다. 현재 104명의 직원 중 절반인 52명이 노인이다. 최고령 직원은 82세. 60대 직원들은 ‘청년’으로 불릴 정도여서 “역시 젊군, 팔팔하네”라는 우스갯소리가 오가곤 한다.
왜 노인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을까. 창업자의 증손자인 가토 게이지(54) 대표는 “회사 대표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주문이 쏟아지면서 주 7일 라인을 가동해야 겨우 납품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연일 초과근무를 해야 했지만 지역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나선 상황이었다. 그때 가토 대표는 ‘나카쓰가와의 노인 인구 중 절반이 미취업 상태로 그중 17%가 취업을 희망한다’는 연구 결과를 접했다. 그는 즉시 신문에 구인 전단을 끼워 배포했다.
‘의욕 있는 사람을 구합니다. 남녀 불문. 경력 불문. 단, 나이 제한 있음. 60세 이상인 분만’. 시루바 채용의 시작이었다. 첫 채용 인원은 15명. 이들이 주말에 나와 일하며 주 7일 생산체제가 확고해졌다. 가토 대표는 3년 만에 회사 매출을 15억 엔에서 40억 엔(약 375억원)대로 끌어올렸다. 2008년 리먼 사태로 대다수 일본 중견기업에 ‘해고 열풍’이 불었으나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은 채 위기를 넘겼다. 다만 납품량이 줄어 생산체제를 주 7일에서 주 5~6일로 축소했다.
노인 직원 고용의 핵심은 ‘주 28시간 이하 근무’다. 일본 근로법상 정규 근로시간(40시간)의 3분의 2 이상 일할 경우 회사가 사회보장 책임을 지는 대신 정부에서 나오는 노인연금을 받을 수 없다. 연금 액수는 평균 월 120만원가량. 이 회사가 노인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시급은 800~900엔(약 9000~1만원)으로 한 달이면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을 수 있다. 가토 대표는 “노인들 입장에선 연금과 월급을 동시에 받는 게 이익”이라며 “그들도 더 일하게 해달라고 할 이유가 없고, 회사도 꼭 필요한 시간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계약서상 노인 직원들의 정년은 70세이지만 회사는 이들이 그만두고 싶어 할 때까지 일하게 한다. 이날 만난 가토제작소 사람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이렇게 말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유능한 법입니다!”
나카쓰가와=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