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도쿄 올림픽, 88년 서울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한·중·일 동양 3국이 서양 중심이던 세계질서에 막을 내리고 지구촌 시대의 평화와 공동번영에 적극 동참한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었다. 그러기에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와 지구촌의 경제, 사회, 문화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한·중·일 3국이 함께 기여할 여지가 크다는 인식을 나누어 갖고 2008년 출범시켰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어제 서울에서 속개된 것은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한 것이다.
이렇듯 걱정스러운 시점에 자리를 함께한 한·중·일 3국 정상은 무엇보다 미·중 관계가 평화적이며 생산적인 대국 관계로 발전하도록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평화를 위한 역사의 소명이다. 미국과 중국은 군사·경제·기술·문화 등 여러 면에서 최고 수준의 강대국이면서도 종교적이나 이념적 과격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세속적이며 실용적 문화가 지배하는 큰 나라들이다. 그러한 두 나라가 안정적 협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다음 두 요건을 각기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첫째, 중국이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음을 미국의 지도자와 국민이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을 포함한 많은 나라는 이미 중국이 미국에 다음가는 초강대국의 요건을 갖춰 가고 있다고 인정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둘째,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육지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바다로는 인도양을 거쳐 중동·아프리카로 연계하겠다는 영향력의 팽창을 위한 것이라면, 비슷한 논리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또는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을 이해해야 된다. 미국은 두 대양,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대륙국가이며 이러한 지정학적 성격이 내포한 잠재적 위력이 21세기에 들어서며 현실화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된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은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유럽권의 국가라는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미국 내에서의 인구와 경제·기술·문화의 중심이 대서양 연안의 동부로부터 태평양 연안의 서부로 확대되고, 일본과 중국이 순차적으로 고도성장의 대표국가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는 태평양시대 개막과 맞물려 미국 스스로도 태평양 국가라는 인식이 국가 정책과 전략의 전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는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미 합중국의 49, 50번째 주로 승격하였을 때 예견된 추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아시아가, 특히 중국이 미국도 태평양 국가임을 인정해야 될 시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미·중 관계가 충돌보다는 공존과 협조 관계를 이루기 위해선 지역공동체를 향한 한·중·일 3국 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이 필수요건이라 하겠다.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이 지적하는 하나나 둘이 아닌 셋만이 창출할 수 있는 묘한 3국 관계의 동력이 아시아·태평양 공동체의 건설까지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한반도의 시대착오적 대결을 접고 남북이 함께 민족공동체 건설의 궤도로 진입하는 평화통일 전략을 확정하고 과감히 추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이홍구 본사 고문·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