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모씨가 그런 경우다. 신씨는 여권에 한글 이름 ‘덕’ 자가 오리를 뜻하는 ‘DUCK’으로 쓰여 있다. 신씨는 올해 4월 외교부에 ‘DUCK’이 ‘오리’ ‘책임을 회피하다’는 뜻의 부정적인 단어라며 ‘DEOK’으로 바꿔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신씨가 해당 여권을 사용해 국외를 다녀온 데다 ‘DUCK’의 의미가 명백히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거절했다. 신씨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하고 나서야 영문 이름 표기를 바꿀 수 있었다. 권익위는 27일 여권에 기재된 영문 이름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을 경우 이를 바꿔 줘야 한다며 신씨의 손을 들어 줬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상 ‘덕’의 표기가 ‘DEOK’이고, 여권사무대행기관 역시 ‘DUCK’을 부정적인 의미로 봐 사용을 피하고 있다는 예도 들었다. 신씨가 그동안 대학교 개인정보, 어학성적표 등에 일관되게 ‘DEOK’을 사용해 와 각종 증명서에 쓰인 영문 이름과 여권 이름이 달라 외국에서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고려됐다.
이처럼 여권 영문 이름 변경 신청은 매년 늘고 있다. 2012년 2392건이던 영문 변경 신청건수는 지난해 3280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10건 중 8건(2726건)의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부정적 뜻” 행정심판 청구
권익위, 외교부에 “바꿔줘라”
외교부, 출국기록 없을 때 허용
“마구 바꾸면 여권 신뢰 추락
테러범 이름 고쳐 입국 우려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영문 이름은 ‘일’을 ‘ILL(아픈)’로, ‘길’을 ‘KILL(죽이다)’로 적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석(SEOK, SUK)을 비속어인 ‘SUCK’으로 적은 경우도 있다. 신씨처럼 여권에 ‘덕’이 ‘DUCK’으로 적힌 한국인은 1만3000여 명이다. 최근엔 이름 가운데 사용한 이음표(-)를 없애고 싶다는 신청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외교부는 해당 여권에 출국 기록이 없을 경우 신청자의 희망에 따라 바꿔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해당 여권을 사용해 출국한 기록이 있을 경우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심사한다. 강제출국자나 테러용의자들이 여권 이름을 바꿔 재입국하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실제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이런 이유로 여권 이름을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여권 신청을 할 때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로마자 검색을 해 정확하게 기재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별한 사유 없이 여권에 기재된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면 외국에서 한국 여권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