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로펌이 하이엔드 분야 인재 함께 키워야

중앙일보

입력 2015.10.27 02:13

수정 2015.10.27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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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중앙일보 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법조인들이 ‘법률시장의 새 동력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데이비드 워터스 GM대우 법무본부장 , 박진원 외국법자문업협회 고문 , 조강수 본지 부장,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 윤세리 율촌 대표 . [조문규 기자]


“변호사 수요·공급의 미스매치가 시장을 요동치게 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지난 22일 ‘글로벌 시대 법률시장 육성 방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본지가 마련한 긴급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위기의 요인을 이같이 분석했다. “국제 중재·금융 등 법률 분야 ‘하이엔드(high-end·고급)’ 시장엔 인재가 모자라고 일반 소송 사건이 주인 로엔드(low-end) 시장엔 신규 변호사가 넘쳐난다”면서다. 데이비드 워터스(46) GM대우 법무본부장, 박진원(69) 외국법자문업협회 고문, 윤세리(62)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최승재(44)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가나다순)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들은 “정부·기업·로펌 등이 새 동력 확보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진행은 본지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이 맡았다.

위기의 로펌 전문가 좌담
금융·국제중재 시장 커지는데
숙련 안 된 변호사만 쏟아져
수요·공급 미스매치가 위기 원인
기업 해외소송 외국 로펌과 협력
로스쿨 전문성 교육도 강화를

 -내년 3차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뭐라고 보나.

 ▶최승재(이하 최)=“법률시장 사이즈는 경제성장률 및 국내총생산(GDP)과 연동된다. 경제침체와 로스쿨제도 시행이 변호사 1인당 수임 건수의 급락과 로펌의 수익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윤세리(이하 윤)=“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문제다. 우리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법률시장의 수요는 하이엔드 쪽에서 증가하는데 공급은 1~2년차 변호사군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로스쿨 교육의 초점이 변호사 시험 합격에 맞춰지면서 다양화·전문화라는 도입 취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법무팀에서도 외국 변호사들을 더 선호한다. 차려진 밥상도 먹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진원(이하 박)=“적정 변호사 수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 변호사 수 2만 명은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일본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미국에선 변호사 수요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난다.”

 ▶데이비드 워터스(이하 워터스)=“지난 10여 년간 IBM·GM 등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하며 한국 변호사 채용을 많이 해봤다. 영어 잘하는 변호사를 뽑고 싶었지만 사람이 없더라. 대부분 보수가 많은 대형 로펌으로 가서다.”

 -대기업의 ‘아웃바운드(해외소송)’ 사건 공략 방안은.

 ▶윤=“전략상 외국 로펌과 한국 로펌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SK증권이 JP모건을 상대로 낸 파생금융상품 소송 사건에서 한국 로펌은 외국 로펌의 카운터파트너로서 한국에서 반소를 제기했다. 소송이 처음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사건을 홈그라운드로 끌고와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전략이다.”

 ▶박=“대부분 국제거래의 준거법이 영미법이라서 한국 로펌만으로는 업무 수행에 한계가 있다. 결국 협력이 대세다.”

 ▶워터스=“기업 입장에서 아웃바운드 사건에서는 어느 로펌인가보다는 어떤 변호사인가가 중요하다. 변호사마다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이슈가 있으면 그 나라에서 먼저 찾게 된다.”

 -사내변호사 3000명 시대는 로펌들에 위협인가, 기회인가.

 ▶최=“대한변협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사내변호사들은 일부 소송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직접 담당한다.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내 로펌들이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윤=“일반 소송 시장은 사내변호사가 흡수하고 고급화 시장은 로펌이 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법률 서비스를 평가할 때 ‘가치’보다 ‘비용’을 중시한다. 이렇게 된 데는 변호사들의 책임도 있다.”

 -3조원대 법률시장의 파이를 키울 전략은.

 ▶윤=“과거 주문 생산 방식이 요즘은 공급자 수요 창출 방식으로 진화했다.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로펌도 고급화 시장을 개발하는 동시에 잠재적 수요를 개발하는 단계로까지 나가야 한다. 대기업들이 하지 않는 석유·가스 등 자원 개발과 에너지 산업 등에 진출한 국내 공기업들이 로펌에 일을 안 준다. 정부가 유도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 문제도 새 시장을 통해 풀어야 한다.”

 ▶박=“법률 수요를 국가가 통제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민사소송이 덜 활성화돼 있다. 미국 월가에는 주주들의 집단소송이 많다. 주가조작·분식회계·허위공시·환경 소송 등의 많은 분야에서다. 소송보다 신속하게 결론이 나오는 국제중재 분야도 발전 가능성이 크다.”

 ▶워터스=“기업들엔 재앙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집단소송이 중요하다. 변호사의 역할도 늘어날 것이다.”

 ▶최=“변협이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 로펌·변협·정부·기업이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찾아야 한다.”

정리=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