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원조 실크로드 종착역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15.10.19 03:00

수정 2015.10.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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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중국 산시(陝西)성 성도(省都) 시안(西安) 북동부의 찬바생태공원에 가면 생각하지도 못한 기념물과 마주하게 된다. 불국사 다보탑과 똑같이 생긴 ‘한·중 우호상징탑’이다. 경상북도가 2013년 산시성과의 자매결연을 기리기 위해 올 5월 이곳에 세웠다.

  시안은 중동·유럽과의 교역을 주도하던 국제도시다. 중국에선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으로 통한다. 이런 곳에 우호탑이 들어선 데는 경주와 시안이 21년 전 자매도시 관계를 맺은 뒤 교류해온 덕도 컸다.

 하지만 우호탑을 위해 요지를 내줄 정도로 경주를 배려했던 시안 주민들의 태도가 최근 싸늘해졌다. 경주가 스스로 비단길의 종착역이라고 선전하며 8월 말부터 ‘실크로드 경주 2015’ 행사를 연 탓이다. 얼마 전에는 시안에서 열린 학술행사에서 한국 학자들이 “비단길 종점은 경주”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자연히 경주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뜨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중국인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실크로드의 종착역을 자부하는 건 경주뿐 아니다. 일본의 옛 도시 나라(奈良)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위치한 왕실창고 ‘쇼소인(正倉院)’ 안에서 페르시아 유리그릇, 인도 비파 등이 발견된 까닭이다.


 신(新)실크로드의 거점도시로 각광받게 된 시안으로서는 “내가 원조”라고 나선 경주·나라가 고울 턱이 없다. 원조 논란은 옛 비단길을 개발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이 힘을 받으면서 더 뜨거워졌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일대일로 사업의 범위를 넓혀야 하는 판에 이웃나라가 관심을 갖는 건 환영할 일 아니냐”는 반박이다. 요즘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불붙인 일대일로 열기로 온통 난리다. 지방 정부는 물론 모든 조직이 보탬이 될 일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베이징의 경극단마저 비단길을 소재로 한 새 작품을 창작할 정도다.

 공산당은 대외 선전에도 열심이어서 지난 14~15일에는 20여 개국 정치인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일대일로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협력 대상국에서 빠진 걸로 보도되지만 당 고위 관계자는 “두 나라의 동참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방관하는 모습이다. 토론회에 오기로 했던 국내 정치인 대부분이 불참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국가적으로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중국판 ‘마셜 플랜’이 일대일로 사업이다. 막대한 국익이 걸린 만큼 이제라도 적극 참여를 검토해볼 일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