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외국계 로펌에 국내 법률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2015.10.0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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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월부터 이뤄질 법률시장 완전 개방을 앞두고 한국 대형 로펌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016년에는 유럽연합(EU) 로펌이, 2017년엔 미국 로펌이 한국에서 합작 법인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합작 법인이 출범하면 해외 로펌들도 국내 사건을 수임할 수 있다. 현재 26개 외국계 로펌이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외국 로펌들의 한국 상륙을 바라보는 국내 대형 로펌들의 걱정도 그만큼 크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법률시장 규모는 3조6000억원대다. 미국 최대 로펌인 베이커 앤드 매킨지의 매출액인 2조8000억원보다 8000억원 정도 많다. 외국 대형 로펌들이 볼 때 큰 시장도 아니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반대로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불안한 구조다. 여기다 변호사 숫자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덤핑 수임에 따른 부실 변론도 한국 법률시장의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달 들어 국내 변호사는 2만여 명에 이르렀다. 1994년 800여 명에 불과했던 변호사 수가 20년 만에 25배 늘어난 것이다. 이는 변호사들 간의 수임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3400여 명이 휴업계를 냈다고 한다. 17.1%의 휴업률로 역대 최고치다. 변호사 1인당 월 평균 사건 수임 건수도 2011년 2.8건에서 지난해 말 1.9건으로 줄었다. 개인 변호사의 경우 건당 수임료가 500만원에서 100만~200만원대로 떨어져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고 폐업하는 변호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 로펌들의 경영난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년 동안 문을 닫은 로펌만도 60여 곳이다. 지난해 30여 개에 이어 올 들어 8월 말까지 30개가 폐업했다. 폐업한 로펌 대부분은 10명 미만의 변호사로 구성된 곳으로 한 해 사무실 유지비 4억~5억원을 감당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틈을 타 국내 기업들의 인수합병(M&A) 법률자문 시장도 외국계 로펌들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올 9월까지 이뤄진 국내 M&A를 자문한 상위 20개 로펌 가운데 14곳이 외국계다. 945건에 858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 중 절반 이상을 외국계가 수임한 것이다.

 이 때문에 법률시장 관계자들은 더 이상 공적 영역에 머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법률시장을 외국계 로펌에 내주게 될 것이다. 법률시장도 엄연한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갖고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국내 로펌들은 좀 더 나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국민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명하게 수임료를 산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전관예우에 기대어 적당히 변론하고 돈을 챙기는 악습도 깨져야 한다. 로스쿨도 변호사 시험 위주의 교육방법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