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해 노벨상 발표가 다가올 때마다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유전체(지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찰스 리(46) 미국 잭슨랩 소장이다. 올해도 국내 여러 언론이 ‘수상 가능성 있는 한국인’이라는 설명을 붙여 유력한 후보로 소개했다. 그런데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서울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당연히 국적은 캐나다다. 그가 한국말을 할 때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까지 알려주며 ‘혈통’을 강조하는 기사도 있다.
이런 집단적 간절함을 정부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는 한 대학 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그리하여 『노벨과학상 분석 및 접근전략 연구』라는 189쪽의 긴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결론으로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전략’이 제시됐다. 울프상·래스커상 등 노벨상에 버금가는 국제적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해 지원하고, 젊은 학자들이 40세 이전에 유명 학술단체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한다는 ‘요령’이 담겼다. 궁여지책임을 감안해도 낯 간지러운 ‘전략적’ 접근이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는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의 포스트시즌 탈락이나 차가워진 공기가 한 해의 끝을 예고하는 것과 함께 가을의 상실감을 자극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국가적·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마음을 먹어 보지만 못 먹는 포도를 신 포도라고 말하는 부정의 자기보호 같아 역시 씁쓸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분간이 어렵지만 이 국민적 박탈감은 며칠 뒤면 기초과학 육성에 대한 ‘반짝 관심’과 함께 사그라질 것이 분명하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