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개막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멀리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영화 ‘하녀’(1960, 김기영 감독)의 여주인공 이은심(80)씨가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에서 33년 만에 귀국, 관객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또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프랑스에 입양됐던 쌍둥이 자매를 26년 만에 만난 한국 입양아 출신 미국 배우 서맨사 푸터먼(28)도 자신의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 ‘트윈스터즈’를 들고 고향인 부산을 찾았다.
1959년 영화 ‘조춘’으로 데뷔한 이씨에게 두 번째 작품인 ‘하녀’는 그야말로 출세작이다. 중산층 4인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하녀는 기괴하면서도 욕망에 충실한 악녀였다. 개봉 당시 한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저년 죽여라!”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파격적이었다. 한편으론 주류 계급 사회의 배타성과 비열함에 희생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하녀가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개성 강한 얼굴과 분위기의 존재 자체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 유례없는 캐릭터였다”며 “이은심은 그 역할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배우였다”고 평했다. ‘하녀’는 심리 스릴러의 걸작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세계 각국 평론가와 감독이 뽑은 ‘아시아 영화 100선’의 10위에 선정됐다.
부산영화제 두 여인의 특별한 귀향
‘하녀’ 이후 영화 몇 편을 더 찍었지만 이씨는 자신이 “연기에 재능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남편인 이성구 영화감독의 몸이 쇠약해지면서 82년 부부는 이 감독의 누나가 있는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영화와도 미련없이 이별했다. 그 사이 김기영 감독은 하녀를 변주해 ‘화녀’(1971) ‘화녀82’(1982) 등을 발표했고, 2010년엔 임상수 감독, 전도연 주연의 리메이크 작 ‘하녀’가 나오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리메이크 작을 봤다는 이씨는 “나보다 훨씬 더 예쁘고 연기도 잘하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딸, 손녀딸과 부산을 찾은 이씨는 고인이 된 남편의 영화 ‘장군의 수염’(1968)을 3일 관람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관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방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나는 조국이 늘 자랑스러웠고, 한국이 뉴스에 나오면 길게 나왔으면 했어요. 브라질에서 죽겠지만 언제나 한국사람이란 걸 느낍니다.”
부산=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