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로레알그룹과 유네스코는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는, 그러나 ‘충격적인’ 연구조사를 하나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늘어나고 있지만 세계 여성 과학기술인들은 전체 과학기술인의 30%에도 미치치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학계의 권위있는 위치에 있는 여성 과학자는 프랑스 29%, 미국 27%, 유럽연합 11%, 일본 6% 등 선진국도 그 수가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 폴 아공 회장은 “세계는 과학을 필요로 하고, 과학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는 게 기업의 신념”이라며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목소리가 과학에 제대로 반영 돼야만 인류가 당면한 절실한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레알그룹은 이런 목적으로 1998년 유네스코와 함께 ‘로레알-유네스코 여성 과학자상’을 만들어 매년 전 세계 5개 대륙별로 탁월한 업적을 달성한 5명의 여성 과학자에게 상금과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은 ‘세계 여성 과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데 지금까지 115개국 2250명의 여성 과학자들이 지원을 받았다.
-화장품 기업이 왜 과학계를 지원하나.
“과학은 로레알의 DNA다. 역대 5명의 CEO가운데 창업주인 유젠 슈엘러(1909~1957)와 3대 CEO인 샤를르 즈비악(1984~1988)이 화학자였다. ‘과학적 혁신’은 창업때부터 그룹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로레알이란 이름에도 그런 가치가 녹아있나.
“그런 셈이다. 창업자 슈엘러 회장이 직접 개발해 특허를 낸 머리 염색제 이름인 ‘로레올(L'Aureole:빛의 고리라는 뜻)’에서 따왔으니까 말이다.”
-여성 과학자가 왜 많아야 하나.
“과학은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질병이 가장 위협적인지, 대기 오염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뭔지. 이런 문제는 남녀 모두가 함께 풀수록 더 잘 풀 수 있다.”
로레알에게 과학은 혁신과 동의어다. 아예 처음부터 연구개발(R&D) 대신 ‘연구혁신(R&I)’이란 용어를 쓴다. 그룹은 매년 매출의 3~4%를 R&I에 투자하고 있으며 매년 500개 이상의 특허를 쏟아내고 있다. 처음 로레알을 접한 사람들이 ‘여기가 화장품회사인지 제약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전세계 23개 연구소와 16개 테스트센터를 운영하는데 60개국에서 온 4009명의 연구원이 30개 전문 분야에서 연구 매진하고 있다. 특히 전체 연구원 중 여성 연구원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한국에는 지난 1999년 미국·프랑스·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테스트센터를 설립했다.
흥미로운 건 로레알에서 연구가 마케팅과 연동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로레알 본사 연구소에서 새로운 원료나 분자 등을 찾아내면, 세계에 퍼져있는 현지 연구소들이 지역마다 특정 인종의 피부와 머리카락에 맞는 형질에 적합한 성분을 또 한번 찾아낸다. 본사에선 이 결과들을 취합해 세계적으로 가장 시장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동시에 지역에 특화된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연구와 고객 수요를 파악하는 마케팅이 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셈이다.
과학을 통한 혁신은 그룹의 전사적 목표인 ‘공유뷰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새롭게 개발된 제품의 46%는 재활용 가능한 원료를 사용하거나 친환경적으로 제조된 원료로 만들어졌다. 또한 지난해엔 2005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2%, 물 소비량도 36%을 절감했다. 공장과 유통센터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23.1% 줄일 수 있었다. 아공 회장은 “새로운 성장 모델을 통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선 기존의 사고 체계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