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취직이 게임이라면 우린 지금 리셋하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2015.09.30 01:20

수정 2015.09.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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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6월 출범한 ‘함께하는 경청 포럼’은 2개월에 한 번씩 시민들이 모여 서로의 견해를 경청해 각종 난제들의 해법을 찾는 자리입니다. 이달엔 청춘 세대들이 취업난을 주제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청춘리포트팀이 그들의 취업 고민을 경청했습니다. 다음은 취업준비생들의 실제 사례를 각색해 온라인 게임 형식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구직 활동이 게임이라면 리셋하면 좋겠다”는 한 취준생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2030, 취업난을 말하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PC방 알바, 일하며 공부하며
역시나 학점은 C…취업도 멀어지네”

 
STAGE 1: ‘덜컥 합격은 했는데…’

“그래! 가는 거야!” 정규직 지원의 필수 3종 세트 중 하나라는 ‘교환학생’. B학점으로 합격한 건 천운이었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 절망이 몰려온다.


 ‘학비는 두 학기에 600만원, 비행기는 편도 100만원 밑으로 막고…’. 기숙사비, 식비를 합치니 못해도 1년간 2000만원은 필요하다. 현재 수입? 하루 5시간 하는 시급 5800원짜리 근로장학생이 전부다.

STAGE 2: ‘떠나가는 썸녀’

 월평균 6만원 나오던 교통비가 8만원으로 넘어간 지 석 달. 끼니는 평균 5000원인 학식으로 때운 지 오래다. 간신히 야간에 돈을 ‘조금 더’ 얹어주는 PC방 알바를 구했다. 주 4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해 받는 돈은 약 90만원. 비행기표와 생활비는 막겠다.

 오랜만에 시간을 내 동아리 여자 후배인 ‘썸녀’와 데이트를 했다. “오빠, 나 오늘 피자 먹고 싶어!”란다. 영화 예매에 쓴 돈까지 합치면 4만원도 넘을 텐데…. 망설이는 내 표정을 보더니 “아, 떡볶이가 당기네!”라며 활짝 웃는다. 그런데 데이트 잘하고 들어간 썸녀, 그날 밤 카톡을 읽고도 답이 없다. 역시 돈 없는 대학생에겐 연애도 사치인가.

STAGE 3: ‘쏟아지는 잠, 떨어지는 학점’

 PC방 알바 3주째. 하루 5시간을 채 못 자니 온종일 잠이 쏟아진다. 꾸벅꾸벅 졸다가 생각났다. 내일까지 보고서 마감이다.

담배 연기가 뼈까지 스며들 것 같은 PC방에서 논문을 뒤적이며 보고서를 쓴다. 오늘따라 손님은 왜 이리 많은지. 결국 괴발개발 쓴 보고서를 제출했다. 역시나 결과는 참담하다. 여기에서 학점 더 떨어지면 취직이 더 힘들지도 모르는데…. 끊었던 담배를 한 개비 빌려 물었다.


“최종만 8번 탈락
중국어도 하는데 왜 기업 눈엔 들기 어려울까”

 
STAGE 1: ‘칠전팔기, 도전이다!’

 드디어 오늘이다. ○○항공 최종면접. 서류 준비부터 토론면접까지 석 달 넘는 고행을 잘도 버텼다. 구직장, 장하다! 일곱 번 떨어지면 어떠냐, 여덟 번째 붙으면 되는 거지. 합격 평균을 내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붙으면 ‘장땡’이라 이거야. 양복과 타이가 잘 어울리는지 다시 점검하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도 해본다. 면접마다 시키는 중국어 자기 소개도 달달 외웠다.

STAGE 2: ‘버틸 힘도 참아낼 힘도…’

‘귀하는 최종 불합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또다시 날아든 불합격 통보. 도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양복 사느라 돈 날린 거? 아니면 실낱 같은 희망을 품던 내 마음에 또다시 어퍼컷을 날린 거? 이것 때문에 △△상사 면접은 가지도 못했다. 인간적으로 수천 명 중 딱 한 명 뽑을 거면 미리 말 좀 해주면 덧나냐. 더 많이 뽑는 곳으로 지원이라도 해보게. 다음주부턴 다른 기업 공채를 또 준비해야 하는데….

STAGE 3: ‘내가 뭐 어떻다는 거야?’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이로써 최종만 여덟 번 탈락. 또다시 공채 준비할 기운이 없다. 알 만한 대학에 중국어까지 하는데 왜 이리 기업 눈에 들기는 어려운 걸까. 생긴 게 문제인가, 말투가 어눌한가. ‘열정과 근성을 보여주라’는데 내 마음을 열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뽑을 사람 다 정해놓고 묻겠지’란 생각도 들고. 서류부터 다시 준비해야 한다니 막막하다. 지금까지 최종면접에서만 여덟 번 탈락. 긴장은 덜고 열정을 더하리라 다짐해본다. 딱 올해 말까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임시방편 계약직…잦은 야근에
취직 2라운드 준비 어느새 가물가물”

 


STAGE 1: ‘진퇴양난’

 ‘어디든 취업은 하지 않겠어요?’ 이게 무지하게 안일한 생각이라는 걸 난 왜 지금 안 거냐. 1년 동안 일자리를 알아봤다. 대기업 입사는 하늘의 별 따기고 갈 만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초장부터 연봉이 얼마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떨어지니? ‘○○대 행정계약직 합격’. 아! 진짜 다행이다. 일단 합격했으니까 여기서 돈 벌면서 인생 제2라운드를 준비하면 되겠지?

STAGE 2: ‘저… 퇴근 안 하세요?’

 한 달에 버는 돈은 94만원.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이다. 그런데 계약직이라도 막내는 막내였던 거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외친다. ‘저… 과장님, 퇴근은 언제 하실 건가요?’ 아무도 대놓고 “퇴근하지 말라”고 안 하지만 어디 사회생활이 그렇던가.

 내가 여기서 평생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인생 제2라운드를 준비하려면 준비할 시간도 필요한데. 아, 차라리 요즘 대놓고 “저 갑니다!” 외친다는 알바생들이 부러워진다.

STAGE 3: ‘신입사원, 나이 보나요?’

 잦은 야근에 체력은 떨어져만 가고. 정규직도 아닌데 확 그만둬버려? 아니야, 그래도 이 돈이 없으면 맥주 한 캔도 망설여질지 몰라.

 이래서 ‘돈 벌다가 공부하기 어렵다’는 소리들을 하나보다. 이제 내 나이가 여자 신입사원으로선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정말이지 구직 활동이란 먹고살기도 빠듯한 20대 후반 여성에게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차라리 시험 준비를 다시 해볼까? 취업준비가 게임이라면 리셋이라도 되지. 뭐가 정답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