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재닛 옐런 Fed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뜻밖의 말을 했다. "중국과 신흥국 경제 불안에 따른 불안정성이 커졌다.” 듣기에 따라서는 Fed가 글로벌 경제 불안을 고려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일부 이코노미스트와 언론은 Fed가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는 식의 분석을 쏟아내기도 했다.
금리동결 이유로 신흥국 불안 내세운 건 옐런의 핑계일 뿐
Fed, 철저히 자국 이익 중심 결정할 것 … 우리는 준비 됐나
다음 물가. 현시점에서는 풀 수 없는 최고의 숙제다. Fed가 물가를 판단할 때 기본 지표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지수 상승률은 지난 7월 1.2%(전년 동월비)에 그쳤다. Fed의 목표치(2.0%)에 한참 모자란다. Fed가 2009년 3월 첫 양적완화를 실시한 후 지난해 10월 3차 양적완화를 종료할 때까지 총 4조 달러를 시장에 풀었다. 돈이 풀리면 물가는 오른다는 게 일반적인 경제 이론이었다(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 이게 안 맞는다. 물가가 꿈쩍 않고 있다. 이론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전 세계 중앙은행의 학술토론장인 잭슨홀 미팅. 기타 고피너스 하버드대 교수는 “통화가치와 인플레이션 간 전통적 연결고리가 깨졌다”고 주장했다. 시장에 달러가 많이 풀리면 가치는 떨어진다. 이 결과 수입물가는 올라야 한다. 그런데 기축통화인 달러화로 수입품을 결제하는 미국에선 환율과 통화가치에 따른 물가 변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말은 곧 ‘돈 풀었다고 물가가 오르지 않으니 통화정책 결정 때 물가 변수를 비중 있게 고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Fed 입장에서는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옐런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주요 지표가 그럭저럭 좋게 나오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여건에서 옐런은 신흥국 경제 불안이 미국의 경제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는 곧 미국 경제가 아직 허약한 상태라는 뜻이다.
옐런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오판이다. 금리를 올려야 할 정도로 미국 경제가 성장궤도를 탔느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만약 옐런이 금리를 올렸다가 다시 경기가 고꾸라진다면 옐런과 Fed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다. Fed는 과거에 판단 잘못으로 미국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한 트라우마가 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시중에 달러를 풀기 위해서였다. 돈이 돌자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이 보였다. 그러자 결정적 실수가 나왔다. 37년이다. 마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경기가 살아났다고 보고 시중에 푼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연속 올렸다. 경제는 다시 대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게 Fed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된 ‘에클스의 실수’다.
옐런이 금리를 동결하면서 중국과 신흥국 경제의 불안을 부각시킨 건 핑계로 보인다. 본질은 미국 경제다. 옐런의 말 한마디에 세계 경제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흥국 경제는 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경제에서 가장 나쁜 게 불확실성이다. 태풍이 불어도 바람 방향을 알면 배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는 배가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기 일쑤다.
한국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가장 취약한 나라의 하나로 꼽힌다. 가계부채는 지난 6월 말 기준 1130조원에 달해 폭발 직전이다. 경제 구조개혁은 말만 있지 실천은 없다. 성장 엔진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모건스탠리 등 36개 해외 투자기관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상치(평균)를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인 2.5% 수준으로 낮춰 잡았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는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론은 넘친다. 지나친 비관론도 안 되지만 막연한 낙관론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부처 주요 수장들의 마음은 벌써 콩밭(내년 4월 총선)에 가 있는 것 같다. 위기는 방심할 때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