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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김수영(1921~68), ‘풀’ 중에서
30년이 훌쩍 지나 중년이 된 지금, ‘풀’은 또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먼저 누울 줄 아는 유연함, 바람에 더 빨리 울 줄도 아는 현실주의, 먼저 눕고 먼저 우는 부드러움이 오히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내공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남산의 소나무도, 결코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도 훌륭하지만, 오히려 바람에 먼저 울고 바람보다 빨리 눕는 현실적 유연함이야말로 훗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을 수 있는 힘의 뿌리임을 깨닫게 된다. 이제 우리에겐 강경한 원칙보다 부드러운 유연함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필요하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