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까지 그가 이렇게 살아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 7월까지 추신수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4월 말에는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 중 최저 타율(0.096)을 기록했고, 6월 11일 제프 배니스터(50) 레인저스 감독과 수비 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 야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그는 어떻게 반등할 수 있었을까. 지난 5일 LA 원정에 나선 추신수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만났다.
-전반기 부진을 어떻게 이겨냈나.
"살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항상, 모든 걸 잘할 순 없다. 그걸 인정하는 게 (슬럼프 탈출의) 시작이었다. 야구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후반기 들어 놀라울 만큼 잘 때리고 있다.
"라인드라이브가 많아졌다. 타구의 질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깥쪽 공을 받아쳐 안타를 만들고 있는 건 예전의 내 타격이 돌아오고 있다는 걸 뜻한다. 시즌 초반에는 볼에 방망이가 많이 나갔지만 최근엔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출루머신'의 명성도 회복하고 있다.
"타격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가면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유인구에 속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볼넷을 얻는다. 가끔 몸에 맞기도 한다. 팀을 위해 출루하는 게 나의 임무다."
전반기 추신수의 부진은 심리적 문제였다. 타순이 수시로 바뀌었고, 심판의 오심까지 자주 나오면서 그를 흔들었다. 지난 4일 ESPN 보도에 따르면 올 시즌 추신수 타석 때 볼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비율은 11.8%였다. 이는 메이저리그 전체 9위에 해당할 만큼 높은 오심률이다.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덮쳤지만 그는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냈다. 타석에서 나쁜 볼을 골라내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상대와 싸우기에 앞서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했다.
-야구가 새삼 어렵게 느껴졌겠다.
"준비를 철저히 했는데도 안 될 때가 있다. 게다가 난 (라인드라이브 타자이기 때문에) 빗맞은 안타도 거의 안 나온다. 오히려 잘 맞은 타구가 잡힐 때가 많다. 아쉽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다음 기회엔 안타가 나오고, 홈런을 칠 수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니 그렇게 되고 있다. 노력하면 언젠간 대가가 찾아온다."
-어느새 고참 선수가 됐다.
"젊을 때는 파워를 늘리는 운동을 많이 했다. 지금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지구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신인선수나 이적선수를 챙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구가 기록경기지만 본질적으로는 팀 경기라는 걸 날이 갈수록 느끼고 있다."
-텍사스가 가을 야구를 할 것 같은가.
"우리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하루하루 힘든 경기를 펼치고 있다. 지난 201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뛸 때 가을야구 문턱을 넘지 못한 적이 있다. 당시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단판승부(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평생 한 번 찾아올까말까 하는 기회를 너무나 아쉽게 놓쳤다. 올해는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레인저스는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
2013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추신수가 홈런을 때렸으나 신시내티는 2-6으로 졌다. 그가 "야구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라고 말했던 경기였다. 추신수가 전반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 또 배니스터 감독과의 불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플레이오프 진출은 더욱 중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뭔가.
"물론 야구선수가 된 것이 가장 잘한 선택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야구를 할 순 없다. 그렇게 보면 가장 잘한 선택은 아내를 만난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까지 챙겨주는 아내의 마음씨는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 야구선수이기 때문에 난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걸 아내가 다 해낸다. 돈 많이 버는 메이저리거(추신수는 2014년부터 7년 총액 1억 3700만 달러, 약 1600억원에 텍사스와 계약했다)의 아내는 화려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소박하고 내조 잘하는 아내다."
추신수는 지난달 20일 인터뷰에서 아내로부터 받은 조언을 소개했다. 그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아내 하원미(33)씨는 "인생은 건물과 같다. 모래 위에 건물을 세우거나 높게만 건물을 짓는다면 무너진다. 당신은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하며) 강한 건물을 세웠으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남편을 응원했다.
-1999·2000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 주최)에서 2년 연속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야구를 하면서 많은 상을 받았지만 두 차례 MVP에 오른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부산고 2학년 때 MVP를 받았을 때 선배들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피츠버그 강정호(28)가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고, 박병호(29·넥센)도 미국 무대 도전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건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시련과 고난이 있겠지만 그걸 극복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강정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 매우 기쁘다. 선배로서 참 자랑스럽다. 박병호 선수뿐 아니라 한국 선수들의 미국 진출을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그만한 실력을 갖춰야 하고 준비를 잘해야 한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돼야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뛰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해 뛰는 선수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LA=김윤수 조인스아메리카 기자, 김식 기자 kim.yunsoo@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