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간 다툼에 정의를 세우는 데는 두 번의 재판만으로 충분하다.”(윌리엄 H 태프트 전 미국 연방대법원장, 1922년 3월 하원 사법위원회)
‘상고법원’은 두 모델 절충형
일반사건 맡아 3심 수요 해결
“법적 안정성” vs “사법 관료제”
공론화로 국민 공감대 모아야
독일·프랑스는 상고심 법원과 법관 수를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법관 증원론’과 유사하다. 독일의 경우 연방일반법원(BGH)과 행정·재정·노동·사회 등 4개의 전문법원에서 320여 명의 법관이 상고사건을 나눠 재판한다. 민사 사건에 대해선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대법관 1인당 처리사건(약 35건)이 한국 대법원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대신 헌법재판소가 헌법·연방법률의 최종 해석권을 갖는 정책법원 역할을 한다. 프랑스도 헌법위원회와 최고행정법원인 국사원(Conseil d’Etat)과 별도로 설치된 파기원(Cour de cassation·법관 129명)에서 상고사건을 처리한다.
상고법원안은 대법원이 중요 사건을 맡고(미국식), 상고법원에서 일반 사건을 맡음(유럽식)으로써 모든 사건에 세 번 재판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 모델 사이의 ‘절충형’인 셈이다. 양 대법원장은 “상고허가제가 이상적이지만 국민의 상고심에 대한 열망을 외면할 수 없어 나온 아이디어가 상고법원”이라고 설명했다.
법학계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한양대 로스쿨 박재완 교수는 “대법관을 30~40명으로 증원하면 인사청문회 때마다 법원이 정치권에 휘둘리게 된다”며 “상고법원안이 법적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대 법대 이국운 교수는 “상고법원을 신설하면 제왕적인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법관료제가 강화될 것”이라며 “헌재가 유일한 정책법원이 되고 전문 상고심 법원을 설치하는 독일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상고법원 판사에 대해 추천 혹은 청문 절차를 도입해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법조 경력 15년 이상인 부장판사급 190명을 1심에 배치하고 판사 370명을 증원하는 등 1·2심을 강화하는 보완책도 내놨다.
이에 대해 서강대 로스쿨 임지봉 교수는 “상고법원 설치는 헌법에 규정된 법원 구조를 뒤흔드는 개헌 사항”이라며 “보다 폭넓은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공감대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