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부임을 과시하고, 품위는 팽개치며,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트럼프 스타일’ 이 미국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돌풍에 부시 전 주지사는 군소 후보로 밀렸다. 클린턴 전 장관은 트럼프 바람에 숨어 있는 ‘반(反) 워싱턴 정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 국무장관 시절 개인 e메일을 공식업무에 이용했다는 논란까지 겹치며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출마를 고심하는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서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대세론의 소멸이다.
젭 부시 따돌리고 당내 지지율 1위
힐러리와 맞대결 4%P 차 추격
호화판 전용기 타고 다니며 “뚱뚱한 돼지” 등 거침없는 막말
클린턴 전 장관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지난 5월 클린턴 50% 대 트럼프 32%로 크게 뒤졌으나 지난 27일 45% 대 41%로 4% 포인트 차로 따라 붙었다. 클린턴·부시·트럼프 3자 대결에선 각각 40% 대 24% 대 24%로, 트럼프가 제3후보로 독자 출마해도 부시 전 주지사와 맞먹는 득표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클린턴 전 장관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계속 추락하고 있다. 지난 7월 55%를 얻었다가 한달 만에 45%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샌더스 상원의원은 17%에서 22%로 상승했고, 출마가 임박했다는 바이든 부통령이 새롭게 18%를 차지했다.
트럼프 돌풍을 만든 또 다른 동력은 백인 사회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배설 캠페인에 있다. 멕시코인 불법이민자를 “성폭행범”으로 비난하고, “아시아인은 인사말이 없다”며 아시아인들의 서툰 영어 발음을 조롱한 트럼프. 그는 중국을 놓곤 “위안화 평가 절하는 미국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엔 안온한 백인 커뮤니티에 스며드는 히스패닉에 대한 언짢음과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담겼다. 버지니아주 의회의 마크 김 주 하원의원(민주당)은 “백인 주류 사회가 자기들끼리 있을 때 은밀히 나눠왔던 대화를 대놓고 공개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한 레즈비언 여성 코미디언에 대해 “뚱뚱한 돼지”로 인신 모독을 하며 보수 백인 사회가 동성애자에 대해 갖고 있던 노골적인 혐오감을 대변했다. 그간 소수 인종, 동성애자, 여성 등을 거론할 때 차별이나 모욕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미국 정치인의 덕목이었지만 트럼프는 이를 깨버렸다. 그러나 보수 백인 사회는 이를 놓고 ‘막말’이 아니라 ‘할 말’을 했다고 환호하며 트럼프 지지로 연결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선거 공식 파괴는 워싱턴 정치가 금과옥조로 여겨온 품위 파괴에도 있다. 반듯한 정치인이 아니라 비뚤어진 반항아 스타일로 오히려 워싱턴 정치에 신물을 느낀 유권자를 흡수한다. 트럼프는 클린턴 전 장관을 놓곤 트위터에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뭐로 미국을 만족시키겠나”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막말에 진보와 중도세력은 거부감을 보이고 있어 그가 대선 본선에서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