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오빌 셸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

중앙일보

입력 2015.08.28 00:08

수정 2015.08.2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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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 박사는 “축복이든 저주든 미·중 사이에 낀 처지를 한국이 어쩔 도리는 없다”며 “인권과 민주주의, 국정 운영(거버넌스)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미국 최고의 중국 전문가를 꼽으라고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뉴욕 소재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미·중관계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오빌 셸(75) 박사다. 하버드대와 UC버클리대에서 중국사를 전공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언론인 겸 대학 교수, 저술가로 활동해 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출간된 『돈과 힘』(존 델러리 공저)을 포함해 지금까지 쓴 중국 관련 저서만 10권에 달한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아시아소사이어티 한국센터와 동아시아재단이 공동 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그를 지난 18일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런 양다리 전략이 통할 수 있다고 보나.

한·미·중이 모여 통일 이후 대비 비밀 계획 세울 때

 “인정해야 할 것은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간 규모의 성공적인 국가다. 중국과 미국에 한국이 양다리를 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거칠고 위험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쪽의 불만도 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이걸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한국인들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축복이든 저주든 중간에 낀 처지 자체를 한국이 어찌할 도리는 없다. 두 나라 사이에서 요령껏 배를 잘 모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인권과 민주주의, 거버넌스(국정 운영)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배를 잘 몰기 위해 중요한 게 외교술이라고 보는데.

 “그렇다. 중소 규모 국가엔 외교력이 특히 중요하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자기 뜻대로 끌고 갈 힘이 있다. 중국도 그런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럴 수 없다. 영리함과 외교술로 자기 뜻을 조심스럽게 펼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 중국의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가는 게 맞다고 보나.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인들이 입은 엄청난 상처를 생각하면 중국이 대대적으로 승리를 자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유의할 점은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등 파시스트 세력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열병식이 반일(反日) 감정을 자극하는 퍼레이드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앉아 최첨단 미사일과 항일전 참전용사 행렬을 지켜보는 것이 한국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인가.

 “미국도 한국의 딜레마를 이해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일 한국 대통령이라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 일본을 규탄하기 위한 것인지 분명치 않은 퍼레이드에 참석하기 위해 천안문 광장에 가는 것을 편하게 느낄 것 같지는 않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진하지도 않았지만 후퇴하지도 않았다. 과거사는 심리적인 문제에 정치적 문제까지 얽혀 있는 매우 심층적이고 까다로운 이슈다.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다 보면 마치 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폭압적인 아버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는 걸 듣는 느낌이 든다. 역사에는 수많은 부당함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100% 선명하게 정리되기 어려운 것이 역사다. 완전한 정리를 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사과를 압박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 ‘아베 담화’에 대해 백악관은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서울과 베이징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좀 더 신중하게 반응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마 미국도 속으로는 한국이나 중국의 입장에 더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체면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과 비공식적으로 말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중·일 3국과 관련한 문제 중에는 말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차라리 나은 것들도 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아베 담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놀라운 대응이다. 박 대통령은 상당히 온건하고 원숙한 반응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의 ‘아량(magnanimity)’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통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되돌려놓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에도 부메랑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비슷한 문제가 독일에도 있다. 러시아의 위협과 관련해 독일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로부터 방위비 확충과 재무장을 통해 유럽의 집단적 방위에 더 큰 역할을 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일본도 미국으로부터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동맹국 방위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그에 따라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과거처럼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아베 총리의 생각이 어떻든 일본 국민은 개헌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로 돌아가긴 어렵다. 하지만 중국이 일본을 군사적으로 압박해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힘을 빌려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견제하는 일종의 ‘안보 아웃소싱’ 정책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명한 정책이라고 보나.

 “모든 관계에는 상대가 있다. 한쪽의 행위는 상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하면 당연히 중국은 맞대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지역의 긴장 수위를 높여온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그동안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보인 중국의 공세적 행보라는 점이다. 앞으로 중국이 아시아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매우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대비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중국과의 협력적 관계 구축에 관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노력에서는 미국도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중국몽’의 요체가 뭐라고 보나. 국가의 부강(富强)인가, 국민의 행복인가.

 “중국 국민의 행복보다 중국의 위대함과 영광 재현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본다. 중국은 오랫동안 굴욕과 수치의 시기를 보냈다. 국민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위대하고 존중받는 나라를 만드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 수밖에 없다. 부강한 중국 건설이 시 주석의 중국몽이다.”

 - 개인적으로 국가의 부강과 국민의 행복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나.

 “국민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의 행복은 외부의 침략이나 점령, 착취 등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국가의 능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회, 즉 기능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일본이 그렇다. 요즘 미국인들에게 일본은 잊힌 존재다. 더 이상 일본에 대해 말하지도 않고, 일본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본 영화를 안 보고, 일본 의상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일본에 가보면 누구나 일본이 기능적으로 매우 뛰어난 사회라는 걸 알 수 있다. 교육의 질이 좋고, 교통 인프라도 훌륭하다. 빈곤율은 낮다. 고도의 기술 수준도 갖추고 있다. 모든 것이 우수하고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 일본에 갈 때마다 국가의 부강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목표가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 한국도 그렇다. 교육도 우수하고, 중산층의 수준도 높다. 의료 시스템도 좋다. 기능적으로 상당히 잘 굴러가는 사회다.”

 - 시진핑과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서 전통적 북·중 관계가 변했다는 시각이 많은데.

 “나도 그렇게 본다. 김정은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중국 친구들로부터 많이 듣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럽다는 얘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이 충분히 영리하다면 은밀히 중국을 불러 북한의 비핵화와 주한미군 감축 등 한반도 통일 이후에 대비한 비밀 계획을 세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그동안 중국은 놀랄 만큼 괄목할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중국은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걸로 본다. 미래로 가는 중국의 길이 초강대국을 향한 직선 코스는 아닐 것이다. 중국이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법치(法治)의 원칙에 따라 보다 정의롭고, 공평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만일 중국이 대외적 모험, 예컨대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 쓸데없이 많은 힘을 쏟는다면 좋은 사회를 만들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정치적·사회적 혼란에 빠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중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수출 주도형 경제를 소비 주도형 경제로 바꾸는 등 변화가 불가피한 중대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주가 폭락이나 위안화 평가절하, 부동산 거품 등에서 보듯이 그런 전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중국은 아주 운이 좋았다. 위험한 하강 국면 없이 상승세만 지속해 왔다. 하지만 중국 경제에도 하강 국면은 올 것이다. 중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경제적 하강 국면에서 살아남는 것이 앞으로 중국이 직면할 최대 도전이 될 것이다.”

 - 중국이 지금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된다면 미·중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나.

 “중국이 부강하지만 오만한 나라가 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부강하면서도 세계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나라가 된다면 큰 문제 없이 미국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미·중의 협력 없이는 세계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각 있는 미국 지도자라면 중국의 부상을 수용하고, 두 나라가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박종근 기자

오빌 셸 박사는 …

1940년 뉴욕 출생. 61년 대만국립대 수학. 64년 하버드대 졸업(역사학). 67년 UC버클리대 석사(중국사). 68년 UC버클리대 박사(중국사). 75년 뉴요커·뉴리퍼블릭 베이징특파원.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LA타임스·뉴스위크·타임·포린어페어스 등 기고. 96년 UC버클리대 저널리즘스쿨 학장. 2007년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