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손을 흔들지 마오
내가 탄 마차가 지나가면
당신은 흙먼지를 뒤집어쓴다네
(…)
거짓으로 사랑하였으나 목 놓아 울었네
- 황병승(1970~), ‘모래밭에 던져진 당신의 반지가 태양 아래 C, 노래하듯이’ 중에서
가짜 이야기에 지칠 때
나를 깨워주는 한 문장
그런 시기에 이 시를 읽었다. 거짓으로 사랑하였으나 목 놓아 울었다니! 우리의 사랑은 어차피 거짓이다, 그러고도 목 놓아 우는 우리는 실패한 존재들이다. 진실의 뜻이 뭔지 물어보는 거짓, 성공을 무시할 수 있는 실패. 바로 내가 쓰려고 했던 세계였다. 내가 길을 잃은 것은, 세상이 말하는 진실과 성공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 구절은 이후에 쓴 장편소설의 소제목이 되었다. 그 챕터에는 빈소에 모인 사람들이 망자의 삶을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고 실패자로서 추모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의 삶은 ‘실패한 모험을 마치고 자신이 믿지 않는 것들 속으로 천연덕스럽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오래전 친구의 빈소에서 그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고 혼자 약속한 적이 있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 데에는 나를 흔든 시 한 줄도 힘을 보탰다.
은희경·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