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사원에게 회식은 또 하나의 시험대다. 부서 상사들의 입맛을 알아내 메뉴를 고른다. 식당을 예약할 때는 빈약한 부서 운영비까지 감안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건배사를 궁리하느라 또 머리를 쥐어뜯어야 한다. 수많은 술자리와 건배사로 단련된 선배들 앞에서 그냥 “○○를 위하여~!”하면 잔끼리 부딪치는 소리마저 무거워진다. 본격 면접은 노래방에서 진행된다. 랩이 섞인 최신곡을 안무와 함께 소화해야 “이번 신입은 잘 뽑았네” “보기보다 재미있는 친구”라는 덕담이 쏟아진다. 뒷설거지도 막내의 몫이다. 힘겹게 택시를 잡아 윗분부터 순서대로 모신 뒤 구십도 배꼽 인사를 올려야 하루가 끝난다.
직장을 잡은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회식과 노래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환영회, 송별회, 신년회, 송년회…. 승진하면 축하연, 누군가 인사에서 물먹으면 위로연이 열린다. 밤의 조직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스마트폰으로 건배사 앱을 다운받아 외우고, 출퇴근길에 최신 노래 가사를 익혀야 한다. 오죽하면 한 달에 30만~40만원 들여 탬버린을 활용한 노래방 댄스, 최신식 건배사를 배우는 학원을 다닐까. 학교 음악시간에도 안 배웠던 발성과 호흡의 기본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물론 수십 년간 조직생활을 해온 어른 세대의 잦은 회식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먹고 마시며 스트레스와 오해가 하나도 풀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툭하면 회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 지난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12.3L로 세계 평균의 두 배였다. 잦은 회식으로 술 취한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또 하나 윗분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게 있다. 오늘도 당신의 조카뻘인 조직원들이 회식에 대비해 차 안에서 노래와 춤을 연습하고, 이번에 외운 건배사만큼은 입에서 술술 나오길 기도하며, 늦은 새벽 나만 기다리다 소파에서 잠든 가족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손광균 JTBC 경제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