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청와대 들먹거리는 성추행 교사부터 처벌해야
황교안 국무총리는 어제 “성폭력 문제를 포함한 4대 악 근절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확고한 원칙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교내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는 학교 책임자에 대해 최고 파면까지 징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 교원은 즉시 직위해제해 피해자와 격리하고 징계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징계의결 기한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군인과 공무원의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 방침 등을 내놓았다.
성폭력 사건은 한번 발생하면 피해 당사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황 총리의 다짐이 헛구호가 돼서는 안 된다. 정부 대책이 지속성을 갖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관계기관의 협조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그릇된 관행과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해당 교사와 교장 등은 사건 은폐에만 급급할 뿐 정작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성추행 의혹을 사고 있는 남자 교사들은 오히려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다” “방학 뒤에 다시 돌아온다” 등의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사건 제보자로 추정되는 여교사 책상 위에 커터 칼도 놓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러니 “날마다 애정촌에 출근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사고 있는 것이다. 교육 현장의 최일선에서 학생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대다수 교사가 성추문으로 자존감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교육당국은 하루빨리 관련자들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경찰도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두루뭉술한 대책만으론 성폭력이 없어지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교사부터 조사해 혐의 사실이 드러나면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
한겨레
성폭력 근절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중요한 건 이런 대책이 엄포에 그쳐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직사회에서 성 관련 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엇비슷한 대책이 반복해 제시됐지만, 여전히 온정주의가 작동해 제재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성범죄로 징계받은 교사의 절반이 애초 근무하던 학교에 여전히 다니고 있을 정도다. 학교 못지않게 성범죄가 빈발하는 군대에서도 형사처벌되는 비율이 극히 낮고 고급 장교일수록 쉽게 제재를 비켜간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 관련 법률을 반드시 정비해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앞으로 사법기관도 이런 사건에 대해 더욱 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공적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뿌리뽑히지 않는 원인은 제도적 결함에만 있는 게 아니다. 힘 있는 자들은 아무리 추한 일을 저질러도 결국 유야무야되고 만다는 경험칙에 기반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탓도 크다. 아무리 추상같은 제도가 마련된다 한들 권력에 힘입어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례가 온존한다면 제도의 억지력은 흔들리게 된다.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이 막강한 이들의 성추문에 훨씬 단호하게 철퇴를 내려야 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심학봉 의원(전 새누리당 소속)의 성폭행 의혹은 정부의 성폭력 근절 의지를 시험하는 사례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가 정부의 성폭력 근절 대책을 헛구호로 전락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 영역에서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구조적 원인과 해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된 서울 공립고의 경우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학교 운영이 교사들의 성폭력을 조장하고 이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고충처리 담당자를 두고 신고절차를 마련해도 강압적이고 경직된 위계문화에서는 제구실을 하기 힘들다. 학교, 군대, 공무원 조직 등이 더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논리 vs 논리] “혐의 드러나면 강력 처벌부터” … “공공영역 민주적 소통구조 필요”
일반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는 평생 동안 우울증, 분노, 수치심, 메스꺼움, 자학 등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할 교내에서 학생이 믿고 의지하는 교사에게, 여교사가 동료인 남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일은 더 큰 상처로 남는다. 학교는 지식 전수나 입시 관리뿐 아니라 학생의 정서와 신체를 보듬고 자긍심을 가진 주체적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다. 이번 사건은 학교가 학생들의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주체라는 점과 학생들을 보호하고 이끄는 인륜적 울타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무겁다.
사건의 심각성을 확인한 서울시교육청은 무관용의 원칙에 입각해 성범죄에 연루된 교사의 이름을 공개하고 교단에서 바로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나섰다. 교육부장관은 학교장이나 일선 교육청을 거치면서 피해 신고가 축소되거나 은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라인신문고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무총리도 학교 내 성폭력을 고의로 은폐하거나 대응하지 않는 경우 최고 파면까지 징계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교원단체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교육계의 자성을 약속했다.
지난 7일 국무총리의 범정부종합대책이 발표된 뒤 한겨레와 중앙은 교육청과 정부가 내놓은 교사 성폭력 근절대책에 대해 다뤘다. 두 사설은 전반부에서 공통적으로 정부의 대책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반겼다. 또한 실질적 효과를 지속적으로 거둘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협조와 노력을 당부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관심의 초점이 서로 달랐다. 한겨레는 거시적 관점에서 세 가지 구조적 대책을 다루었다. 첫째는 학교 내 온정주의가 징계를 어렵게 하니 은폐하기 어렵도록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사법부도 엄정한 판단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둘째, 권력층은 성폭력을 해도 법망을 잘 빠져나가므로 단호한 철퇴를 내리라는 주문이다. 셋째, 신고절차가 있어도 권위주의적 분위기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우니 민주적 소통구조를 지니라고 학교에 권고했다. 한겨레의 사설은 법과 제도, 단호한 의지, 조직의 민주적 운영 등 입체적 대책을 내놓았다.
반면에 중앙은 이번 사건을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가해 교사들에 대한 질타와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성폭력에 의한 피해는 당사자에게는 크나큰 상처를 남기는데도, 혐의를 받고 있는 교사들이 청와대를 들먹거리거나 피해자를 간접적 방식으로 협박한 점은 도덕적 분노를 일으킨다. 반성은커녕 당당하게 뻔뻔한 언행을 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중앙은 신속한 진상 조사와 엄격한 처벌을 강조했다.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이번 사건에서 강한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복수의 교사이고 피해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런데도 발생 원인과 진행 과정이 매우 익숙해 더욱 당혹스럽다. 그동안 보아온 성폭력 사건의 구성 요건을 모조리 갖춘 종합세트다. 법적 의미에서 성희롱은 크게 네 가지 요건을 갖는다. 첫째, 가해를 한 행위 주체가 유형·무형의 권력을 가진 자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 교사가 개교를 주도한 교장과 50대의 부장교사들이었다. 둘째, 지위나 업무 관련 힘을 행사해 성폭력을 가한다. 5명 모두 진학과 학생지도 등을 좌우하는 교사들이었다. 그 많은 학생이 복도나 특별실, 수업시간에서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대응하지 못했던 것은 성적과 대학 입시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셋째, 성적 굴욕감을 주는 신체적·언어적·시각적 행위 등을 한다. 그들도 회식 자리에서 동료 교사를 성추행하거나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 중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거침없이 했다. 넷째, 상대방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조직의 환경을 악화시킨다. 성추행에 상처를 입은 여교사들이 교장에게 대책을 요구해도 교장은 은폐하거나 피해자를 회피했고 가해 교사들을 우대했으며 심지어 자신도 성추행에 가담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들은 학교에 얘기해도 안 되고, 경찰에 고발해도 소용없다는 식의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한번 시작된 성추행은 안전하다고 판단될 경우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장의 묵인도 문제였지만, 학교 밖의 권력도 한몫했다. 교육청에 신고해도 감사관은 무능하거나 불성실했다. 해당 교사에 대한 징계 처리도 부실했다. 가해 교사가 경찰에 고발당하고 처벌을 받아도 휴직한 후 복귀하거나 전보발령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나마도 학교는 한참 후에 조치를 취하는 늑장 대응을 보였다. 작은 공동체인 학교 안에서 5명의 교사가 마음 놓고 성추행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부실한 감시와 편들어주는 권력, 그리고 개인의 비양심 덕분이었다.
성폭력 범죄를 보면 누구나 분노감을 느낀다. 크고 작음의 정도가 다를 뿐 성폭력은 흔하기 때문이다. 구조냐 개인이냐, 예방이냐 처벌이냐는 성폭력 근절 대책의 양 날개다. 정부와 교육청, 학교 모두가 두 측면을 아울러 실천해야 실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다음 주 논점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담화
-8월 25일자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